교회 달력에 따라 대강절을 지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

 

참 많이 기뻐합니다.

어쩌면 365일 중에 가장 기쁜 날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사랑의 표현이고, 고백이라고 즐거워합니다.

맞습니다.

 

기쁘고 즐거운 날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마냥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만 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당신의 외 아들을 이 땅에 보내 시기까지의 인간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면

우리는 마냥 웃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그 모습이 바로 나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예수님의 오심은

하나님의 슬픔의 표현이었고,

나를 향한 오래 참음의 표현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사랑은 오래 참음이라고 말했는지도 모릅니다.

 

대강절에 나를 되돌아 봅니다.

 

첫번째 대강절 주일 아침에 했던 묵상입니다.

 

예수님은 평화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그러나

나와 교회는 폭력의 길을 따랐습니다.

 

예수님은 오셔서 용서와 화해를 이루셨습니다.

그러나

나와 교회는 분열과 다툼의 길을 걸었습니다.

 .

예수님은 오셔서 원수를 사랑하라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나와 교회는 원수를 죽였습니다.

 

예수님은 오셔서 이웃을 사랑하라하셨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웃을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나와 교회는 예수님을 죽였습니다.

 

나는 오늘도 그분 앞에서 눈물을 흘립니다.

그분의 태어나신 성탄일을 기다릴 때

이 땅에서 흘리는 눈물과 아픔을 더 많이 볼 수 있기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우리가 즐거워 할 수 있는 이유는

예수님이 오셔서 이 땅에서 이루셨고,

우리를 통해 이루고자 하신 일들을 우리가 보았고,

경험했고, 맛 보아가기 때문입니다.

 

 

바로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새 사람-new creation”들에게 맡겨진 소명은 화해와 치유입니다 (고후5:17-19).  

 

화해와 치유쉬운 일은 아닙니다.

하루아침에 이루어 지는 것도 아닙니다.

긴 여정이 필요합니다.

 

고통이 따르는 시간일 수 있습니다.

자신과 타인에게 솔직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상처를 감당해야 하는 내적인 힘도 요구됩니다.

 

 

하지만  이 시간을 통해 우리는 참된 나를 만날 것입니다.

              이 시간을 통해 우리는 참된 타자를 만날 것입니다.

              그 무엇보다도 이 시간들을 통해 우리는

                        그분의 형상을 따라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을 참되게 발견할 것입니다.

 

화해와 치유-Reconciliation and Healing”

우리의 소명이고 매일의 삶의 일부분이 되어야 합니다.

 

다음 15일과 22일 예배는 화해와 치유라는 주제로 예배를 드릴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이루신 화해, 그리고 치유의 기쁨을 우리 안에서 발견 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15일은 (자신)와의 화해 그리고 치유

22일은 타인과의 화해 그리고 치유

 

12월 15일 말씀

10:1-15

시편 139:1-8

고린도후서 5:17-19

 

 

이번 주는 우리가 손에 쥐고 있는 돋보기를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 자신을 보는데 사용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너무나 자주 나를 포장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판단하곤 했었습니다. 자신에 대해서는 관대하면서 다른 사람에 대해서 철저했던 우리의 눈을 이제는 다른 사람이 아니 , 자신에게 돌려 내면의 깊은 곳까지 주의 깊게 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현재의 '나'는 지난 시간들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 '나'입니다. 나는 홀로 '나'가 되지 않았습니다. 살아오면서 누군가로부터의 영향, 사건, 때론 상처들로 인해 내가 만들어졌습니다. 때론 하나님의 의도와는 다르게.  자신을 바라볼 때 우리는 자주 오염된 시각으로 볼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주 자신을 바라보는 것을 회피합니다. “벌거벗은 나와 대면하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거짓된 나의 겉 모습을 벗고, 내면의 깊이 잠자고 있는 나의 본 모습을 만나는 것이 두렵기 때문에 우리는 회피하고, 대신에 다른 사람을 더 깊이 관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번 두 주동안은 '나-자신'를 깊이 볼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 시간을 통해 내 속에서 깨어졌던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는 기쁨을 함께 누릴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안셀롬 그린 신부의 책 하늘은 네 안에서부터에 있는 글을 인용합니다.

 

사막의 교부들은 아래로부터의 영성을 가르쳤습니다. 우리 자신으로부터, 우리 욕정으로부터 영성 생활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부들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은 언제나 자아인식을 통해서 시작된다라고 가르쳤습니다. 자아 인식이 함께하지 않은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언제나 단순한 투사일 위험이 있다. 자기 자신의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해 경건한 생활에로 도피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의 경건함은 기도와 경건한 생활로 변화하지 않고 단지 자기 자신이 다른 이들보다 돋보이도록 하기 위해서 그리고 자신들에게 잘못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경건함을 이용한다. 신학은 위로부터의 영성에서 출발한다. 곧장 하나님과 영적인 일들로부터 거론한다.


하진만 영성 생활이란 영혼의 욕정을 관찰하고 투쟁하는 데서 시작된다. 먼저 자신들의 욕정을 인식하고 투쟁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내면의 길을 갈 수 있고, 자기들의 마음을 남김없이 온전히 하나님께 결속시킬 수 있다. 자아인식의 힘든 과정을 거치지 않고, 또 자신의 내면의 어둠과 대면하지 않은 채 영성의 길을 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가 참으로 우리 내면의 어두움-자신의 욕정-을 직시하고 인정하는 용기를 가질 때 하나님께로 인도된다. 오직 자신의 나약함, 흙에서 온 육체, 인간성, 어두운 면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겸손한 자만이 참 하나님을 체험하게 된다.”

 

성령님 앞에서 우리가 참되게 나 자신을 인정하고 열 때 우리는 그분의 빛으로 나의 어두움을 대면할 수 있고, 회피하고 싶은 나의 상처들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시간을 통해 우리는 진정한 하나님을 발견할 것입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이 형제자매님께 함께하기를 기도합니다.    

 

묵상을 돕기 위한 질문들

 

자신을 만나본 적이 있는가?

자신을 미워해 본적이 있는가?

내 면 안에 있는 동기들은 무엇인가?

당신 안에 있는 어두움은 무엇인가? 있다면 그 어두움의 요인은 무엇인가? 상처 때문인가? 그렇다면 상처는 어디에서 왔는가?

나의 어두움, 욕정, 탐욕, 연약함, 상처 그리고 폭력성과 대면해서 싸워본 적이 있는가?

당신의 삶에서 취약한 영역은 무엇인가?

 

 

개인의 믿음의 여정을 성찰하면서, 당신만의 회심의 순간들이 있었는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과의 화해를 경험했는가?

당신의 취약한 존재 내면의 보물은 무엇인가?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와 당신의 관계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당신에게 하나님의 형상은 어떤 의미인가? 당신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발견했는가?

당신이 만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자아성찰의 시간들을 통해, 그 안에서 만난 자신과 하나님을 함께 나눌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12월 22일 말씀은 다음 주 월요일에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