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믿음 II

본문: 눅17:11-19

참조: 레13: 45-46 => 문둥병자에 대한 규례,

레14:1-3 (4-7 정결의식) 8-9 => 문둥병의 완쾌를 확인하는 규례,

막12:28-31 => 첫째가는 계명은?

MCBC 에서 영어권 교회 리더쉽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과정의 하나로 올해는 MLE 4 소금과 빛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MLE 4 소금과 빛은 단원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설교, 예배, 전도). 지난 3-4월에는 설교에 대한 과들을 공부했습니다.  공부의 주제가 설교이다 보니 설교와 관련된 여러가지 이론들을 실습하는 숙제와 숙제를 돕기위한 많은 설교 본문(실제 사용된 설교) 들이 읽을거리로 나와 있었습니다. 특별히 저의 관심을 끌었던 설교가 있었는데 그것은 Barbara Brown Taylor 라는 분이 “10번째 문둥 병자” 라는 제목의 설교였습니다. 오늘 저는 설교를 읽다가 제가 느낀 점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 그것은 믿음에 관한 것입니다. 오늘 제가 택한 본문 말씀도 설교의 본문 말씀입니다.

101: 이것은 기초 메뉴얼을 뜻하는 용어입니다. 자전거 조립 101 하면 자전거 조립에 관한 기본을 가르치는 책이라는 뜻입니다. 101 가장 기본적이지만 가장 중요한 책입니다. 101 마스터 하지 않으면 다음 레벨인 201 제대로 공부할 수가 없습니다. 수학으로 말하자면 정석1, 정석2 해당하는 개념입니다. 저는 오늘 믿음의 201 대한 저의 생각을 나누려고 합니다.

먼저 본문에 나오는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 당시 문둥병과 관련된 율법을 다시 한번 확인해 보는 것이 좋을 같습니다. 레위기 13-14장은 문둥병에 대한 율법으로만 채워져 있습니다. 레위기 13장은 문둥병에 걸린 사람에 대한 규례이고 14장은 문둥병에 걸렸다 완치된 사람에 대한 규례입니다. 먼저 13장 45-46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문둥병에 걸린 사람은 혼자 살되 진밖에 살도록 되어 있습니다. 가족과 공동체가 있는 마을 안으로 들어오면 안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내려 가시는 중에 마을을 지나는데 10명의 문둥병자들이 멀리서서 자신들을 도와달라고 소리쳤다고 되어있습니다. 그것은 들이 마을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예수님은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멀리 떨어져 있는 문둥병자들에게 들리도록 말씀하셨을테니 예수님도 소리쳐 말씀하셨을 겁니다. 한번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가까이 가지도 않으시고 만져주지도 않으시고 기도해 주시지도 않으시고 그저 멀리서서 말씀만 하십니다.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여기서 다시 레위기 14 1-9 말씀을 보겠습니다. 문둥병이 치유되었다고 생각되면 제일 먼저 해야 일은 제사장을 만나 문둥병이 완치 되었음을 확인 받는 일입니다. 그것이 확인이 되면 4-7절에 나와 있는 대로 예식을 치르고 마침내 자신의 가족과 공동체 품으로 돌아 있게 됩니다.

여기서 잠깐 Barbara Brown Taylor 라는 분이 분의 설교에서 던지는 질문을 읽어보겠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만지지도 않았습니다. 진흙도, 뱉음도 믿음에 대한 언급도 없이 가서 제사장에게 몸을 보이라” 명령만 하셨습니다. 그리고 10명의 문둥병자들은 순종하며 조용히 사라졌습니다. 그들중 누구도 이유를 묻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제사장을 만나야 하는 이유는 하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나음을 입었는지 아닌지, 이제 다시 공동체 안에 들어와 살아도 되는지 여전히 마을 밖에서 거지로 살아야 하는지를 확인 받기 위한것 밖에는 다른 이유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중 아무도 이유를 묻지 않고 예수님이 말씀하신대로 순종했고 제사장을 만나러 가는 길에 그들은 모두 나음을 입었습니다. 그리고 들중 아홉은 예수님이 명령하신대로 제사장을 만나러 갔습니다. 그러나 한명은 예수님의 명령을 어기고 예수님께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갑자기 사람이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아홉은 어디있느냐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라는 이해하기 어려운 질문을 던지십니다. 그리고는 열번째 문둥병자를 향해서 일어나 가라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한번 생각해 봅시다. 너무 이상하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열명의 문둥병자에게 가서 제사장에게 보이라고 명령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리고 아홉명의 문둥병자는 예수님이 명령하신대로 행한것 아닌가요? 오히려 열번째 문둥병자가 너무 흥분해서 예수님의 명령을 어긴것 아닌가요? 그리고 열명의 문둥병자 모두 치유 받은 아닌가요? 그렇다면 10번째 문둥병자에게 말씀하신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는 말씀의 뜻은 무엇입니까? 10 모두 구원 받은 것이 아닌가요? 도대체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저는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말씀을 믿음의 101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구절은 우리가 믿어야 믿음의  대상이 누구인지 그리고 믿음을 가져야 이유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말씀에 있는 믿음의 정의만으로는 Barbara 그의 설교에서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10명의 문둥병자는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들의 무조건적인 순종을 통해 보여진 믿음은 결코 예사로운 믿음이 아니었습니다.  혹자는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 아니면 까짓거 속는 치고 한번 보지 뭐” 하는 생각으로 믿음과는 상관없는 마음으로 그랬을 수도 있지 않을까 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건 논리적으로 맞지가 않습니다. 생각해보십시요. 오랫동안 가족과 공동체로 부터 버림받고 구걸하며 살았온 사람들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얼마나 많은 불치병 환자들을 고쳤는지 이미 소문을 들어 알고 있었을 겁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이 예수님을 향해 그렇게 절실하게 도움을 요청했겠습니까? 황금 같은 기회를 놓치면 그들은 남은 평생을 버림받은 자로 구걸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들이 예수님께 도움을 요청했을 그들은 분명히 예수님으로부터 기도나 특별한 치유행위를 기대했을 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멀리서서  치유되지도 않은 그들을 향해 가서 제사장에게 보이라’ 라고만 소리치셨습니다. 입장을 바꾸어 놓고 생각해 보십시요. 여러분이라면 명령을 듣고 에이 밑져야 본전인데뭐’ 라고 생각하며 순순히 돌아서시겠습니까? 명령이 이해가 안되고 믿어지지가 않는데 그저 순종하며 돌아서서 제사장에게로 가실 있겠습니까? 이런 주장도 있습니다. 이런 황금 같은 기회를 눈앞에 사람들이면 보통은 문둥병자로 살다 죽으나 돌에 맞아 죽으나 뭐가 다르랴” 하는 마음으로 마을 안으로 들어와 예수님을 붙들고 늘어졌을텐데 사람들은 마을 밖에 서서 소리만 칠만큼 선한 사람들이었으므로 예수님 명령 한마디에 이상 따지지도 묻지도 못하고 조용히 반신 반의 하면서 돌아간 것은 아닐까 하는 겁니다. 그랬다면 그들은 제사장에게로 가지 않았겠죠. 그냥 가는 했겠죠. 그랬다면 그들의 병이 낳았을까요? 들의 병이 치유되었다는 것은 그들이 예수님을 믿었고 믿음에 따라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했다는 증거입니다. 정리하면 열명의 문둥병자는 분명히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런데 한명만 구원을 받았습니다. 구원 받은 10번째 문둥병자와 나머지 아홉 사람과의 다른 점이 무엇일까요?  

요3:16에는 믿음의 대상과 이유가 나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보내주신 예수님을 우리의 구주로 믿습니다. 그것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벗어나 우리 생명의 근원되신 하나님과 영원히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101 입니다.

제가 말씀 나눔을 하고 나면 은령자매가 항상 하는 충고가 있습니다. 나눔을 짧게 하려고 너무 껑충 껑충 뛰어간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자근 자근 가려고 노력하다보니 서론이 길어져 버렸습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서 믿음의 201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요3:16에서 믿음과 관련해 빠진 부분이 무엇일까요? 저는 어떻게 (HOW) 빠졌다고 보았습니다. 믿음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 하는 말입니다. 저는 믿음의 201 한마디로 표현한 성경구절을 지난 금요일 까지도 찾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가 있을까 계속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중요한 개념을 정립하는데 자신의 언어와 표현을 써야 한다는 것이 무척 조심스럽고 부담스러웠기 때문입니다. 지난 4 부터 KingCrest 에서 진행하는 Alpha 프로그램이 시작되었습니다. 지난번의 실패를 거울삼아 이번에는 교사가 아닌 음식준비를 돕는 helper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매주 Alpha 에서는 날의 주제와 관련된 짧은 DVD 한편 봅니다. 지난주에도 수업 시간 중에 DVD 보는데 죄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중에 막12:30 말씀을 인용했습니다. 순간적으로 아! 이거다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막12:30 ”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서기관 사람이 예수님께 모든 계명중에 제일 첫째가는 계명이 무엇이냐고 물었을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이제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오랜 세월 가족과 공동체로 부터 버림 받고 구걸하며 살았던 10명의 문둥 병자들이 제사장을 만나러 가는 길에 자신의 몸이 완전히 깨끗해 것을 발견했습니다. 마음이 어땠을까요? 몸은 낳았지만 들은 여전히 마을로 돌아가서는 안되는 몸입니다. 정해진 규례를 따라 제사장의 확인을 제일 먼저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도 그렇게 하라고 명령을 하셨고 그렇게 하는 것이 율법을 따르는 행위이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제사장에게로 달려갔을겁니다. 어쩌면 정해진 규례대로 제사장이 확인을 하고 이제 마을로 들어가도 된다고 허락하면 그때 가서  마을로 들어가 예수님을 만나려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10번째 문둥병자는 몸이 낳은 것을 확인한 순간 정신줄을 놓아버렸습니다. 예수님의 명령도 반드시 지켜야 규례도 잊었습니다.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지만 아무 생각 없이 예수님께로 돌아갔습니다.  제사장의 확인도 받지 않고 문둥병이 치유된 자가 거쳐야할 예식도 행하지 않고 마을 안으로 뛰어들어갔습니다. 막12:30절에 나와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는 모습이 보이십니까? 10번째 문둥병자는 빨리 확인 받고 마을로 들어가 가족과 친지와 친구의 품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았을까요? 사람이라고 그런 욕망과 간절함이 없었겠습니까? 다만 자신의 개인적 욕망 보다는 주님을 향한 마음이 컸던 같습니다.

잠시 우리의 믿음을 돌아봤으면 합니다. 우리모두 예수님을 하나님 아들로 세분 하나님 중의 한분으로 우리 생명의 구세주로 우리 삶의 주인으로 믿습니다. 우리 모두 믿음의 열매가 영생임을 또한 믿습니다. 그런데 10번째 문둥병자와 같이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해서 미친듯이 믿습니까? 나의 개인적 욕심이나 바람보다는 주님을 향한 마음이 크고 소중합니까? 아니면 주어진 명령을 지키고 율법을 지키고 법을 지키는 것에 만족하면서 스스로 구원 받았다고 위로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믿음의 201의 Key 마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의 마음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나의 개인적 욕망과 주님을 향한 열정중 어느 것이 우리의 삶과 생각을 지배하고 있습니까?

15 쯤에 아버지가 뇌출혈로 쓰러지시고 6개월간 중환자실에 있을 제가 가끔씩 전화하면 어머니는 괜찮다 걱정말고 너희나 살아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비록 어머니가 그렇게 말씀을 하셔도 제가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그럼 아무 걱정 말고 나만 잘먹고 잘살면 되겠구나 라고 생각하지 않겠죠. 어릴때는 항상 아버지가 먼저 식사하시고 출근하시고 나면 저희들이 아침을 먹었습니다. 아버지 아침상에는 거의 항상 겨란찜이 있었고 아버지는 항상 겨란찜을 이상 남기셨습니다. 어린 마음에 아버지는 저렇게 맛있는 겨란 찜을 매일 남기실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많이 남기고 갈수록 저희는 신이 났지만 말입니다.  ‘가서 제사장에게 보이라’ 명령을 하신 예수님의 마음은 열명의 문둥병자의 간절한 마음을 헤아린 철저하게 문둥병자들을 위한 명령이셨습니다. 그런데 들중 그런 예수님의 마음을 느끼고 자신의 모든 욕망과 원하는 것을 뒤로하고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해서 예수님께로 돌아와 엎드려 감사와 영광을 돌린 사람은 10번째 문둥병자 한명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만이 믿음의 열매을 거두었음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