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사람들  (요한복음 13 1-17)

 

오늘 본문이 훌륭하게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는 것을 아십니까?

먼저 1 에서 6절까지는 예수님의 놀라운 행위가 소개됩니다. 그는 옷을 벗으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십니다.   6절에서 11절까지는  촛점이 베드로에게로 옮겨집니다. 처음에 예수께서 절대로 자신의 발을 씻기실 없다고 했던 베드로는 마음을 바꾸고  바로  씻는 대야로 다가갑니다.  주여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주세요   그리고, 12절에서 17절까지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예수님은 일이  의미하는 바를 알려주십니다. 

 

이는 요한 복음을 통해 거듭 거듭 반복됩니다.  예수님은 소경의 눈을 뜨게 하고  오천명을 먹이시는 것과 같은 참으로 놀라운 일들을 행하시고 행하신 기적의 의미를 설명해 가십니다.

" 나는 세상의 빛이라. "

" 나는 생명의 떡이다. "

 

어떻게 본문이  부분으로 크게 나뉘어지는지 아시겠습니까?  우리는  부분들을 통해   예수의 사람 되는 의미를 이해할 있습니다.

 

오늘 아침,  First United Mennonite Church Sherbrooke Mennonite Church 그리고 Peace Mennonite Church 함께 새로운 시리즈를 시작하였습니다.  우리는 시리즈를  아나뱁티스트들의 선물들이라고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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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vin 나는 지난   일동안  미션에 있는  카톨릭 수도원에서 기도와 묵상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카톨릭은  크리스쳔 교회에 아름다움과  예술, 거룩한 신비,  기도문 등의 영광스런 선물을 줍니다.  우리는 조용하고 신성한 분위기 속에서 가졌던  짧은 기도의 시간을 즐겼습니다. 

장로교는 우리에게 놀라운 해설적 설교를 선물합니다.  저는 장로교 목사인 Darrell Johnson 밑에서 설교를 공부할 있었고,  뉴욕시에 있는  Redeemer Presbyterian 교회의 Tim Keller 설교듣기를 좋아합니다.

그리고 오순절교단이 전체 교회에게 주는 선물이 있습니다. 벅찬 감격과 기쁨, 경이가운데 당신을 자리에서 일어서게 그런 예배를 오랫동안 기다려오셨습니까?  중남미나 아프리카의 오순절 교회들을 살펴보십시오.

우리가 여러 크리스쳔 교단들의 역사적 발전과정과 그들의 선물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진다면 참으로 유익할 것입니다.

 

우리는 오순절교도 장로교도 카톨릭도 아닙니다. 우리는 메노나이트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영적 유산은 아나뱁티즘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예수님의 교회의 다른 파트들로부터 주어지는 놀라운 선물들을  기쁨으로 누리고 있습니다.

우리 아나뱁티스트 크리스쳔들은 다른 교단들에게 어떤 선물을 주어야합니까? 

 

Peace Mennonite교회의 초대 목사님은 'What is an Anabaptist Christian?' 이라는 작은 책을 쓰셨습니다. 목사님은 '아나뱁티스트의 선물'을   카테고리로 나누셨고 우리가 앞으로 3주동안 살펴볼 것입니다. 오늘 아침 나는 여러분과 첫번째 선물을 살펴보려합니다.  아나뱁티스트 메노나이트들이 보는 예수님의 , 특히 예수님을 따른다는 의미가 그것입니다.

 

아나벱티스트들은,  예수님은 우리를  단순히 '크리스쳔' 되도록 부르신 것만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제자로 부르십니다. 

실제로 '크리스쳔'이라는 용어는 성경을 통틀어 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대신 우리는 '예수의 제자'라고 불리우고, 표현은  복음서와 사도행전을 통해  무려 250번이상 언급됩니다.  그래서 아나뱁티스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단순히 '크리스쳔' 아닙니다. 단순히 믿는자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제자들입니다. 예수의 학생들입니다. 예수를 따르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예수의 사람들' 입니다 !"

 

무엇을 의미합니까?  요한복음 13장이 우리의 이해를 도와줍니다.  뒤에서 앞으로 갑시다. 아나뱁티스트들은 다른 것을 좋아했습니다. 우리도 다르게 봅시다. 오늘 본문의 마지막부터 시작해봅시다.

 

12~17절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는 것은 우리의 삶을 요구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제자가 된다는 것은 예수님에 대한 옳은 것들을 단지 믿기만 하는 일이 아닙니다. 아무리 사도신경이 훌륭하다 하더라도 사도신경에 단지 동의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뭐라고 말씀하시는지 15절을 보십시오. “ 내가 너희에게 행한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그리고 마지막 절에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하셨습니다.  본을 따르라! 내가 대로 행하라! 이는 행동에 관한 것이고, 행함을 말하는 것이지 그저 믿기만 하는 것을 말하지는 않습니다.  

 

예수님은 부활 아버지께로 돌아가시기 직전에 하신 최후의 말씀 중에 , 같은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마태 복음 28 18절에서 20 마지막 단락입니다.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그냥 믿는 아니고),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치라” ?      아니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우리 아나뱁티스트들은 예수님이 우리의 선생이심을, 우리의 멘토이심을, 삶의 코치이고 스승되심을 강조합니다.  13절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그래서 우리 아나뱁티스트들은 사도신경에서   '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에서 곧바로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뛰어넘었는지 의아해 합니다.

잠깐 기다려!”  우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뭔가 잊어버린게 없어?  그사이의 모든 일들은 어떻게 하구예수의 모든 가르침들, 병고치심, 사탄을 물리치셨던 일들, 모든 놀라운 일들 그것들이야 말로 중심이 되는 것들인데예수는 우리의 선생이야!”  

복음서들이 아나뱁티스들에게 특별한 중요성을 띄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많은 기독교단들은 서신서들에 중점을 둡니다.  서신서들은 아주 논리적이고 신학적으로 깊어 취할 것이 많다. 복음서들은 예수에 관한 초기 이야기일 뿐이다.”

아나뱁티스트들은 이에 대해  우리는 그렇게 확신할 없다.” 반박합니다.  비록 복음서가 성경 앞부분에 있긴 하지만,  서신서들보다 후에 씌어졌습니다.   이들 '이야기들' 예수에 대한 제자들의 가장 성숙된, 어쩌면 서신서들보다도 깊은  회상들입니다.  

바로 예수에 관한 이야기들 안에서 우리의 가장 깊고 충만한 신학이 발견됩니다.  뿐만 아니라, 진정한 기독교는 바른 신학을 단지 믿기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예수의 행함을 보고 그를 따라가는 것입니다그렇다면 아나뱁티스들이야말로 원조 WWJD 크리스쳔들이 아닐까요?   (주. WWJD-What would Jesus do? 첫자를 말, 예수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우리는 우리의 선생을 바라봅니다.  ' 예수라면 과연 어떻게 하셨을까?'  그리고 우리는 예수의 모범을 따릅니다.  그렇다면,  이는 Jim Carrey 특별히 위대한 제자라는 뜻일까요? 그는 예수님처럼 위를 걸을 있습니다. (주. 짐 캐리는 '브루스 올마이티'라는 영화에서 물위를 걷는 기적을 연기했음.)

 

당신이 지금12살이고 지금 가족과 함께 여행  중에 있다면  WWJD라는 질문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나와 아내가 Otawwa 12살 난 아들을 데리고 간다고 가정해 봅시다.   예수라면 어떻게 했을까요?  아들 잭은 우리한테 알리지 않고 교회 성전으로  가고  거기에서 교회 지도자들과 3일을 지낸다고 가정해 봅시다.  미친듯이 잃어버린 아들을 찾아 헤메는 우리 내외는 안중에도 없이….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했던 일입니다.)   우리는  마침내 잭을 찾게 되고 그를 혼냅니다. 그런데  잭은 오히려 건방지게 반응합니다.  내가 하늘 아버지 집에 있을 줄 알지 못하셨어요?  대신  나는 3일 동안 도시의 유일한 메노나이트 교회에서 3일을 보냈어요.  " ……....……    이것 역시 WWJD 예라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WWJD 그렇게 단순해 보이지만은 않습니다선생의 모범을 따른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예수의 라이프 스타일은 어떠했습니까?  오늘 본문 6~11절, 베드로 얘기로 가 보겠습니다.  

베드로는 3년간 예수님의 제자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를 한결같이 따라왔습니다. 그렇다면 이제쯤이면 그도 궁극적으로  '예수의 사람' 되어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는 예수님의 생활 방식을 그대로 물려받았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스승에게 말은 무엇입니까?  안됩니다. 주님! ”  문자적으로 (8) “ 영원히 발은 씻기실 겁니다   라고 했습니다.  우리 같아도 “ 해가 서쪽에서 뜰 일입니다.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라고 했을 겁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베드로야 , 이제 결정해야 한단다.  만약 내가 너를 씻기지 않으면 너는 나와 아무 상관이 없단다.”   

베드로의 마음에 근본적 변화가 일어나고 그는 몸을 대야에 담그려 합니다.  9절입니다.  주님, 아니라 손과 발도 씻어주세요.”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베드로야 너는 이미 깨끗하다. 너는 벌써 이미 씻겼느니라.”

 

Bruxy Cavey는 2007년  그의 설교 Cruciformity (십자가 신학과 영성 )”  에서 다음과 같은 예를 들었습니다.

단어 'bath' baptism(세례)에도 사용되는 말입니다. 초대 교회는 예수의 암시적 선언을 크리스쳔 세례의 분명한 뒷받침으로 간주했습니다. 베드로는 이미 예수를 따르기로 결심했습니다.  방에 있던 사람 유일하게 씻겨지지 않은사람은 배신자 유다였습니다 (11).  때문에 예수님은 모두다 깨끗하지는 않다고 하셨습니다. 

 

역사적으로 이는 첫번째  '아나뱁티스트들의 선물'  입니다 

예수를 따를 것인가를 선택하도록 부르시는 일,    이것이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생겨나게 되었는가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따른다는 것은 우리 각자가 결정내려야만 하는 선택인 것입니다.

 

16세기 , 유럽의 모든 사람들은 '크리스쳔'이었습니다 .  갓난 아기일  모두 세례를 받았습니다.  모두가 믿는 자들이었습니다 누구도 크리스쳔이 아닌 사람이 없었습니다 . 과연 그럴까요?   하지만 수많은 전쟁들이 있었고,  끊임없는 증오,  폭력,  탐심, 간음 그리고 살인 등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모두가  '크리스쳔' 있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모두가 예수를 믿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를 진정으로 따르는 자들은 극소수였습니다.  예수의 제자는 실제로 너무도 적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그룹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근본적 개혁주의자로 불리웠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개인은 예수의 제자가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 결정을 내려야한다. 개인은 스스로 자신의 선택을 해야하고 그리고 성인으로서 세례를 받아야 한다.”   이유로 그들은 적들로부터 '아나뱁티스트-재세례자들' 불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들 근본주의자들, 아나뱁티스트들은 유럽전역으로 가서 크리스쳔들이 예수의 사람들' 있도록 부르고, 세례를 베풀고 그리고 제자들을 만들었습니다.

 

초기 아나뱁티스트들 중의 사람이었던 Michael Sattler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세례는 회개와 변화된 삶에 대한 가르침을 받고, 예수의 부활신앙 안에서 걷기를 소망하고, 예수와 함께 묻히고,  그래서 그와 함께 다시 부활할 것을 믿는 모든 자들에게 주어질 것이다.”

 

우리 메노나이트들은 부분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우리는 이상 사람들로 하여금 선택하도록 부르는 일에 있어 철저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양다리를 걸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제자들에게는 '반은 안쪽' 그리고 '나머지 반은 바깥쪽' 상황은 있을 없습니다. 어디서 우리의 복음주의적 용기와 열심을 잃어버린 것일까요?   어떻게 우리는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나를 따르라. 내가 너를 씻어주지 않으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말씀하셨을 때의   예수님의 모범으로 돌아갈 있을까요?

 

예수님의 본은 복음주의적 형제, 자매들에게도 도전이 됩니다.  예수님은 많은 결정을 끌어내고 많이 손들게 유도하는 불안정한 복음주의자가 아니셨습니다. “개인의 구주로 나를 받아들일 사람 없나요?   공짜로 주는 은혜 원하지 않나요? 나를 따라서 기도를 반복하세요. 구원은 공짜입니다 !”   예수님은 결단코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현대식 복음전도적 언어는 결코 성경적 언어도 아닙니다.     

서신서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통해  구원이라는  은혜의 선물을 우리에게 값없이 주셨는지를 읽습니다.  하지만 모든 서신서는 당시 크리스쳔들에게 씌어졌지 크리스쳔이 아닌 사람들에게 씌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를 따르기로 선택을 크리스쳔들에게 바울은 너희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완전해진 것이다. 그래서 너희는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  벌지 않은 것을 그저 받았다. 이는 순전히 값없이 받은 선물이다.” 라고 했습니다.

이는 결코 예수님, 바울 그리고 복음주의자들이 Non-Christian에게 했던 말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를 당신 마음에 받아들이기만 하세요.  어려운 상황에서 헤어나올 있는 공짜 티켓을 위해 기도하세요라며 믿지 않는 자들을 꼬시려 하지 않았습니다.

 

바깥에 있는, 그래서 안으로 들어오기 위해 선택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오라, 나를 따르라 말씀하시고   생각해라.  세상을 버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제자가 준비가 되었느냐?  아직  확신이 서지 않으면 잠시 떠나서 이에 대해  생각해 봐야 것이야.” 하십니다.

 

세례를 받게 되면 이는 근본적으로 새로운 삶을 의미합니다. 

이는 세상과  세상의 관점을 버리는 일입니다. 이는 위대함과 성공, 그리고 힘이라는 세상의 거짓된 개념을 닦아 냄을 의미하고 정화를 뜻합니다. 

이는 근본적으로 새로운 정체성- 세상에 새롭게 존재하는 길을 의미합니다.

 

본문 파트,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행하신 터무니없는  , 발을 씻기신 부분으로  보십시다.  물론 베드로와 그의 제자들은 모두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발은 먼지와 진흙으로 더러워져있었고  당시 이를 씻는 것은 노예들의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팔레스틴 길은 오늘날의 짐바브웨의 길과 같았습니다.  기후가 건조할 때면 먼지가 인치 높이로 쌓이고 , 우기에는 진흙탕이 됩니다.   불결한 발로 식탁자리에 앉아있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기꺼이 노예가 되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어떻게 예수님이 노예처럼 되실 있단 말입니까?     

 

1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아시고.'   

사람은 누구입니까?   3절 '예수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모든 권세를 가지셨습니다.   '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  예수님은 자신이 누구인지 아셨습니다.  그는 전능한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오셨습니다.  그는 하나님께로 돌아갈 것입니다. 하나님이 바로 여기 계십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무엇을 하셨습니까?  그는 발을 씻기셨습니다.   정말로?  

아랫도리만 걸친   웅크리고 있는 노예의 모습에서 절대적인 하나님을 발견할 있겠습니까?

 

,  만약 우리가 예수님을 우리의 선생과 주로 따른다면, 그렇다면 우리도 발을 씻기는 공동체가 되어야만 합니다.  1;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죽기까지) 사랑하시니라'

끝까지 !  근본적인 사랑으로 !

 

예수를 따름은 먼저 예수의 사랑을 받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나서, 사랑받은 자로서의 새로운 정체성에서 나오는 사랑으로, 

리는 비로소 근본적  사랑을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말입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의미는 나의 머리와 손과 발을 예수님이 씻어주시도록 내어드림을 뜻합니다.

후에 역시 같은 사랑으로 다른 사람의 발을 씻어줄 있습니다.

그것이 초기 아나뱁티스트였던 Hans Denck 말한 바입니다.

자신의 삶으로 예수를 따르지 않으면 아무도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없고 사랑할 없습니다.  그리고 예수를 알고 예수의 사랑을 받지 않으면 아무도리스도를 따를 없을 것입니다.  그를 모르는 자는 그를 가질 없고,  없이는 아버지께로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께 속하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그리스도가 걸었던 길을 걸어야만 합니다. 예수를 따른다는 의미는 발 씻기는 자들의 공동체가 되는 것입니다 

 

이는 또 위대함과 힘에 대한 근본적 재해석입니다.

우리에게 많은 돈과 지위, 힘이 있고 삶이 평탄할 ,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고 나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음을 확신할 있습니다. 모든 좋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야기를 통하여 세상 논리를 봅니다. 십자가 앞에서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비웃었습니다. “ 네가 만약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하나님이 정말 편이고 너도 하나님 편이라면, 십자가에서 내려와서 자신을 구해라   헤롯도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 네가 참으로 메시야라면, 예수여 내게 기적을 보여보라."  겟세마네 동산에서 사탄 역시 예수님을 같은 생각으로 유혹했습니다. “ 예수여, 군대의 천사들을 부르라 그리고 권세를 잡으라.  네게  권세가 있고,  하나님이 편이라면 뭐든 .  정부의 혼란을 바로 잡고 사람들을 영향력있는 요직에 앉혀.   실제적으로 부딪혀. 싸움에서 이기는 거야  예수.  누가 권세자인지 세상에 보여 주란 말이야.”

예수님의 공생애 초기에 있었던 사탄의 유혹도 같았습니다.

첫째 유혹: “ 네가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증명해 보이라. 너를 배불려봐 예수여.”   둘째 유혹: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면, 세상의 왕이 되어봐.  당연한 권세를 가지는 거야.”   셋째 유혹: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면, 성전에서 뛰어내려 어떻게 하나님이 너를 보호하시고 보살피시는지를 보이는거야."

하나님이 편이고 네가 하나님편임을 보이는 길은 세상을 다스릴 힘을 가지는 것으로, 자신을 구하는 것으로, 자신을 보호하는 것으로, 자신을 돌보는 것으로 증명할 있어.

 

“No.”  예수님은 말하십니다. “그것들은 악마적 사고이자 사탄의 길이야.   그것은 길이 아니야. 나라에서는 섬김을 통해 하나님이 편이고 너는 하나님편임을 증명해. 너희들은 근본적인, 내가 아닌 남이 중심이 사랑을 통해서  너희가 나의 제자임을 알려야 .  사탄의 길에서는 너는 스스로를 지켜야하고, 배불리고, 너의 방식대로 해야 하지. 하지만,  예수의  길은 너의 삶을 내려놓고 다른 사람을 섬기는 거야.  다른 사람들 위에 힘으로 군림하는 대신, 희생적이고 겸손한 사랑의 힘을 행사하지

 

오늘을 사는 많은 크리스쳔들은 여전히,  내가 싸움에서 이기고 ,  내가 원하는 대로 일이 풀리고, 굶주린 사람들이 있을 배부를 있고, 세계의 반대쪽은 가난할 나는  부유할 있는 것을 하나님이 편이시라는 증거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우리에게 주는 아나벱티스트들의 선물이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의 사람'으로 성공한 것을 가늠하는 기준으로 좋은 , 멋진 자동차, 좋은 , 좋은 음식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분명히, 하나님이 우리들을 그러한 좋은 것들로 축복하실 때는 기쁩니다.  하지만, 이것들이 하나님이 내 편 되심의 증거는 아닙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하나님편이고 하나님이 당신편인줄 아셨습니다.  그래서 옷을 벗으시고 더러운 발을 씻기셨습니다. 

 

여러분도 여러분 자신의 필요보다 타인의 필요에 먼저 반응하고,  헐벗은 자를 입히고, 굶주린 자를 먹이고, 빈곤한 자를 보호하고, 나에게 해를 입히는 자를 선대하고, 상처입은 자를 싸매어주고, 아픈자를 낫게 하고 , 그리고 당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모든 것이   하나님이 당신편임을 알게 것입니다.

First Menno 그것이야말로 참된, 복음주의적 믿음이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이 예수를 따른다는 의미입니다.

 

,  여러분을 초청합니다. 온전히 새로운 삶으로의 길로 예수를 따르시겠습니까

근본적인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여러분의 삶을 결정지을 유일한진정으로 중대한, 기념비적인 선택입니다.

 

세례받기로, 힘에 대한 더럽고 낡은 생각, 폭력, 탐심, 세상의 모든 구습으로부터 씻겨지기로

선택하시겠습니까?

 

예수님의 근본적인 사랑에 안기시겠습니까?

발씻기는 자들의 공동체에 함께 하시겠습니까? 

원수를 사랑하시겠습니까?

모든 폭력을 물리치기로 서약하시겠습니까? 

예수님을 닮고, 예수님처럼 섬기고, 예수님처럼 씻기고, 예수님처럼 사랑하고, 예수님처럼 여러분의 삶까지도 내려놓으시겠습니까? 

 

결정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아마도 여러분께서 잠시 눈을 감고 싶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음속에 조용히 이렇게 기도하고 싶으실지 모르겠습니다.

 

 “예수님,

  나의 선생과 주가 되어주시기 바랍니다. 당신을 닮고 싶습니다.  당신을 따르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