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를 나타내는 단어는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을 뜻하는 “에클레시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이 교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개인을 말한다기 보다는 예수님의 제자들의 공동체를 뜻합니다. 공동체를 이루는데 있어 중요한 요소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성도의 교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진 교회 공동체 안에서 형제자매의 친밀한 교제가 없다면 그 공동체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 연합, 그리고 형제자매와의 교제와 연합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 “fellowship”을 뜻하는 헬라어는 ‘코이노니아’입니다.

코이노니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기초로 한 제자들의 사랑 안에서의 “교제”를 뜻합니다. 코이노니아는 풍부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저는 서로를 향한 “제자들의 사랑의 교제의 풍성함을 통해 이루어 지는 돌봄과 나눔이 있는 공동체”로 표현하고 싶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을 중심에 모신 제자 공동체는 예수님에 대한 사랑과 서로에 대한 사랑을 중심으로 서로를 향한 구체적 관계, 즉 코이노니아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메노나이트 선교학자, 데이비드 옥스버거는 ‘코이노니아’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성경에서 사랑을 뜻하는 가장 고상한 단어는 ‘아가페’가 아니라 ‘코이노니아’다. ‘코이노니아’는 친밀한 사랑의 관계를 바탕으로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돌보며 헌신하는 삶을 의미한다. 같은 길, 예수님의 길을 걸어가는 신앙의 동료끼리 나누는 사랑의 교제가 ‘코이노니아’다. ‘코이노니아’의 관계는 단순한 ‘동료의식’이 아니라 늘 한결 같은 태도로 서로를 향해 헌신하는 것을 말한다. ‘코이노니아’의 삶은 사랑으로 돌보는 공동체 안에서 서로 관계를 맺고 사는 삶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가 이러한 코이노니아 관계로 나아가는 공동체를 이루며 살 수 있을까요?

오늘 읽은 말씀 빌립보서 2장 1-5절을 통해 그 길을 찾아가고자 합니다.
다시 한번 제가 빌립보서 2:1-5절을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에게 무슨 격려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무슨 동정심과 자비가 있거든, 여러분은 같은 생각을 품고,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 마음이 되어서, 내 기쁨이 넘치게 해 주십시오. 무슨 일을 하든지, 경쟁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고, 자기보다 서로 남을 낫게 여기십시오. 또한 여러분은 자기 일만 돌보지 말고, 서로 다른 사람들의 일도 돌보아 주십시오. 여러분 안에 이 마음을 품으십시오. 그것은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형제자매의 코이노니아는 바로 예수님의 마음에서 시작합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 지체들에게 “예수님의 마음”를 품으라고 권면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공동체, 예수님 때문에 모인 사람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그 안에서 형제자매가 된 공동체, 함께 그리스도의 몸을 이룬 교회 공동체가 함께 품어야 할 마음은, 바로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우리 개인개인이 품어야 하고 닮아야 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함께 닮아야 하고 품어야 하는 마음이기도 합니다.

돌봄과 나눔의 코이노니아를 풍성하게 하기 위해 우리가 품어야 하는 예수님의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요? 빌립보서 2:1-5에 나온 예수님의 마음을 묵상했습니다.

1. Being with, Being together-예수님의 마음은 함께함, 즉 서로 함께 하는 마음입니다.

빌2:1절에 나오는 격려, 사랑의 위로, 성령님과의 교제, 성령님의 이끄심으로 인한 서로간의 교제, 긍휼 그리고 자비는 혼자 살아가는 삶이 아닙니다. 누군가와 함께 더불어 살아 갈 때 서로를 향한 마음입니다. 함께 있을 때 우리는 교제도, 사랑도, 긍휼도 위로와 격려도 나눌 수가 있습니다. 함께 하는 마음은 자기 일만을 돌보는 마음이 아니고, 서로 다른 사람들의 일도 돌보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 12:15절에서 “기뻐하는 사람들과 함께 기뻐하고 우는 사람들과 함께 우십시오.”라고 권고합니다.

우리는 먼저 우는 자와 함께 있어야 합니다. 우는 자는 또한 연약한 자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연약한 사람들과 함께 있어야 합니다. 물론 우리는 결코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연약함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과 그 고통 가운데 함께 있을 수는 있습니다.

같은 또래 어린 아이를 둔 두 엄마가 있었습니다. 아이들도 서로 친하고, 엄마들도 서로 친하게 지냈습니다. 한 엄마가 사고로 딸을 잃게 되었습니다. 너무 슬펐고 아팠습니다. 어떤 위로의 말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딸의 친구가 찾아 왔습니다. 아이가 돌아간 후 그녀는 친구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오늘 네 딸로 인해 위로를 받았다고. 엄마는 딸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아줌마를 위로 해 주었지? 딸아이는 말합니다. 그냥 아줌마의 딸처럼 아줌마의 품에 안겨 함께 울었다고 대답했습니다. 딸의 친구가 함께 품에 안겨 울었을 때 그녀는 위로를 받았습니다. 우리가 몸만이 아니라 마음으로 함께 있을 때, 함께 있어 주는 것 만으로도 우리는 서로에게 격려가 되고 위로가 됩니다.

우리는 매 시간을 함께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예배를 통해 우리는 함께 있고, 그 시간을 통해 함께 하나님을 바라보고, 함께 하나님 앞에 서 있고 서로를 바라봅니다. 그리고 그 함께 있음을 통해 서로를 안아 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배 후 함께 하는 식사를 통해 함께 하는 성도의 교제, 코이노니아를 이룰 수 있습니다. 함께 있어주기 위해 우리의 시간을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과 나눠야 합니다.

우리 안에 Heartburn으로 인해 음식을 잘 먹지 못하는 자매님도 계시고, 피부 때문에 음식을 조심해야 하는 아이도 있습니다. 우리 중에 연약한 자들과 함께 있어 준다는 의미와 우리가 함께 있어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금요일 모임이 끝난 후에 몇몇 자매님들이 예배 후에 하는 점심 식사를 어떻게 하면 좋을 까? 음식을 어떤 것으로 준비하면 좋을까?를 고민하며 나누는 모습을 보며 이것이 함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함께 있음은 서로의 마음을 듣고, 서로의 아픔을, 어려움을 듣고 함께 느끼며, 나누는 것입니다.  서로의 짐을 지어주기 위해 고민하고 찾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나눔과 돌봄이 있는 코이노니아 입니다.

우리는 또한 즐거워하는 자와 함께 즐거워해야 합니다.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 할 수 있는 마음은 공동체 안에서 발생하는 많은 질투와 시기를 물리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물론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배려 해야 합니다. 하지만 너무 지나친 배려로 우리 안에 있는 기쁨과 즐거움을 나누지 못한 다면, 우리가 함께 하는 기쁨,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을 누리지 못합니다. 기쁨을 표현하십시오. 그리고 함께 기뻐하기를 바랍니다. 기쁨을 표현하는 것은 자랑이 아니고 교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기쁨을 표현하고 나누는 것은 성도의 교제, 코이노니아를 더 풍성하게 할 것입니다.

함께 할 때 물론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다른 사람들보다 우월한 위치에 두어서는 안됩니다. 함께 있어 주는 마음은 개인의 이기적인 목적을 위해 혹은 자신을 자랑하고 싶은 동기에서 시작해서는 안됩니다. 사도 바울은 권합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하고 자기보다 서로 남을 낫게 여기라고 말입니다. 우리가 함께함을 가능하게 해 주는 것은 우리에게는 누구나 연약함이 있고 그 연약함은 공동체 다른 지체들에 의해 채워질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깨달음에서 시작합니다. 사도 바울은  롬1;12절에서 말합니다. “내가 여러분과 함께 지내면서 여러분과 내가 서로의 믿음으로 서로 격려를 받고자 하는 것입니다.”

성도의 교제, 성령의 교제인 코이노니아는 함께 있음을 통해, 우는 자가 마음껏 울 수 있도록 격려하고, 기뻐하는 자가 마음껏 기뻐할 수 있도록 격려함을 통해 더 풍성하게 이루어 질 수 있습니다.

2. Being Unity –예수님의 마음은 하나되는 마음입니다.  

   하나되는 마음은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되는 마음은 예수님의 기도입니다. 요한복음 17장 20-23절 예수님은 기도하십니다.
“나는 이 사람들을 위해서만 비는 것이 아니고, 이 사람들의 말을 듣고 나를 믿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빕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과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어서 우리 안에 있게 하여 주십시오. 그래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을, 세상이 믿게 하여 주십시오.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영광을 그들에게 주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인 것과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신 것은, 그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것은 또,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과 같이 그들도 사랑하셨다는 것을 세상이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공동체 안에서 형제자매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됨은 아버지로부터 사랑 받고 있다는 것을 보이는 증거입니다. 하나되는 마음은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머물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되는 마음은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간절한 바램이고, 우리가 품어야 하는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사도바울은 권합니다. “여러분은 같은 생각을 품고,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 마음을 품으라고 말합니다.” 즉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인 교회 공동체가 한 마음을 품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도 떠나시기 전 제자들의 하나됨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예수님의 마음을 향해 함께 걸어 갈 때 우리는 하나됨을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 생각을 품고 뜻을 합하여 한 마음이 되는 것은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이룰 수 있지만 또한 공동체 안에서 우리의 연습이 필요합니다.

  함께 하다 보면 서로 생각이 달라 부딪치는 일도 있지만, 그 과정 또한 교회 일치에서 우리가 배워야 하고 연습 해야 할 중요한 과제들 중 하나입니다. 교회 안에서의 하나됨이 각자 자신들의 원칙을 포기하거나 다른 사람의 마음에 들기 위해 자기의 다름을 표현하지 않았기 때문에 외견상 얻어진 것이라면, 공동체 안에서 그런 하나됨은 존재하지 않는 편이 더 낫을 것입니다.
진정한 하나됨은 서로의 생각과 마음이 성령 안에서 하나될 때까지 힘겨운 씨름의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불편함과 불일치의 과정을 통해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뜻을 찾아 연합과 일치로 나아가는 것이 진정으로 하나되는 과정입니다.

성령 하나님이 우리 안에 일하시며 우리를 그리스도의 공동체로 만들어 가고 계시지만, 우리는 관계 속에서 서로 부딪치며 모난 부분들이 점차 깎여 나가는 경험을 통해 진정한 하나됨을 경험할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잃지 말아야 하는 마음은 높은 마음을 품지 않고, 남을 나보다 귀하게 여기는 마음입니다. 하나되는 것이 예수님의 마음임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서로가 함께 한 마음을 품을 때, 우리 안에서 코이노니아는 더 풍성하게 경험될 수 있습니다.

3. Being humble-낮아짐을 선택하는 마음입니다.

낮아짐은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예수님은 높은 데 마음을 두지 않으시고 낮은 곳에 마음을 두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모습을 지니셨으나, 하나님과 동등함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서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셔서,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높은 보좌에 앉아 우리를 기다리신 분이 아니라, 자신을 비워 우리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찾아 오셨습니다. (빌2:6-9)”

낮아짐은 자기비하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낮아짐은 자신의 양을 위해 그분의 생명까지 버리시기로 선택한 그분의 자발적인 헌신이었습니다. 낮아지는 마음은 진정한 용기가 필요합니다. 자신을 부인하고 예수님의 선택을 따르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스스로 낮아짐을 선택한 다는 것은 무조건 높아지려고만 하는 이 시대의 문화를 거스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낮아짐을 선택한 다는 것은 더 많은 것, 더 큰 것을 선택하라고 부추기는 이 세대의 시대 정신을 거절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낮아짐을 선택하는 것은 세상의 유혹을 이기는 용기입니다.

낮아짐을 선택하는 것은 낮은 자들과 사귐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됨을 누리거나 주장하지 않으시고, 낮은 자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셔 우리의 친구가 되셨습니다. 그분은 이 세상에 사시는 동안 높은 곳에 마음을 두지 않으시고 사회에서 비천한 사람, 장애를 가진 사람, 병자, 세리, 창녀, 죄인들과 함께 식탁의 교제를 하시고, 그들의 친구로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사회에서 낮은 자들과 코이노니아를 이루며 사셨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낮아짐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낮은 자들과 교제를 하는 것입니다. 낮은 사람들을 우리의 코이노니아 (교제, 사귐) 안으로 초대하는 것이고, 우리가 그들의 코이노니아 (교제) 안으로 또한 들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모인 우리는 예수님의 마음을 닮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는 공동체가 바로 “돌봄과 나눔이 있는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우리가 품어야 하는 예수님의 마음은 “함께 있는 마음이고, 하나되는 마음이고, 낮아짐을 선택하는 마음”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으로 함께 하는 성도의 교제, 코이노니아는 “돌봄과 나눔”을 우리 안에서 더 풍성하게 합니다. 코이노니아는 친밀한 사랑의 관계를 바탕으로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돌보며 헌신하는 삶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