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를 의미하는 Greek ‘Ekklesia’의 문자적 의미는 ‘called out of, ~으로부터 불러내다’의 뜻입니다. 단어 ‘ekklesia’은 특별한 목적을 위해서 불러내어 함께한 모임으로 자주 사용됩니다. 영어 성경은 이 단어를 ‘assembly, church, 혹은 congregation”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교회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받은 사람들의 fellowship,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표현합니다. 즉 교회는 한 개인을 의미한다기 보다는 몸을 이루는 사람들의 공동체를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어떠한 공동체가 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교회들은 교회의 존재 목적을 찾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리고 그 목적을 따라 비전을 세우고 실천합니다.

“Blended Worship”의 저자 Robert Webber는 자신이 속해 있는 교회가 “하나님께서 이 교회를 부르신 목적, 즉 교회가 어떠한 공동체로 존재 해하는가?라는 질문을 가지고 신약성경을 연구한 후 찾은 여섯 가지 교회의 본질적 모습을 “Worshiping community 예배 공동체, Teaching community 가르치는 공동체, Fellowship community 교제의 공동체, Mission community 선교 공동체, Healing community 치유 공동체, Servant community 섬김의 공동체로 정리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 여섯 가지 중 가장 근본/토대가 되는 것은 바로 “Worshiping community” 즉 예배 공동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하나님을 경배하는 예배가 없이는 교회의 다른 존재의 목적/모습이 온전하게 이루어 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메노나이트 분들이 쓴 “congregational Discipling”이란 책에서 교회의 근본적인 세 영역을- ‘Worship 예배, Mission 선교, 그리고 Community 공동체”-라고 말합니다. 세 영역이 유기적으로 잘 이루어질 때 건강한 교회를 이룰 수 있다고 합니다. 교회에서 예배를 빼놓는다면은 교회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예배는 교회의 중요한 정체성이고 존재의 목적입니다.

저희 교회가 추구하는 중요한 다섯 영역이 있습니다.
우리는
1. 기쁨의 축제가 있는 예배 공동체 (Worship)를 추구합니다.
2.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제자 공동체 (Disciple)를 추구합니다.
3. 섬김과 돌봄이 있는 사랑 공동체 (Love)를 추구합니다.
4. 하나님의 꿈을 함께 꾸는 비전 공동체 (Vision)를 추구합니다.
5. 세상을 향해 열려있는 선교와 섬김 공동체 (Mission & Service)를 추구합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행위가 없다면 교회 공동체의 정체성은 사라질 것입니다. 예배는 교회 공동체를 다른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공동체와 구별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우리가 이곳에 왜 모여있으며, 우리의 모인 목적이 무엇인지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 주는 것이 바로 “예배”입니다.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함께 모였습니다. 우리 교회는 하나님을 전심으로, 진정으로 예배하는 예배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주일이기 때문에 모여서, 습관적으로 행하는 행위로써의 예배가 아니라, 생명력 있고 생기가 있는 예배, 하나님을 함께 기억하고,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 안에서 함께 기쁨을 경험하는 예배를 사모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애굽의 바로 왕에게 보냅니다. 이때 모세를 통해 하나님께서 처음으로 바로 왕에게 말한 것은 ‘예배’입니다. “나의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광야에서 나의 절기를 지켜야 한다.” 모세가 바로에게 다시 말합니다.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우리가 광야로 사흘 길을 가서 주 우리의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수 있게 허락해 주십시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이집트로부터 광야로 불러내도록 보냄받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로 불러내고 그 광야에서 언약을 세우십니다.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너게 있게 말지니, 우상을 만들지 말고 그것들에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다시 말하면 하나님만을 예배하고 섬기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특별한 목적이 있어서 이집트에서 광야로 불려내신 “Ekklesia”이었습니다. (사도행전에서 스테판이 광야의 이스라엘 지칭할 때 사용함)  즉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광야로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의 공동체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지켜야 했던 절기들은 “유월절과 무교절, 오순절, 안식일과 안식년, 속죄일, 초막절등이 있습니다. 이중에 유월절과 오순절 그리고 초막절을 유대인의 3대 절기라고 합니다.

오늘 읽을 말씀 느헤미아 8장과 9장은 바벨론 포로로 잡혀갔던 유대인들이 돌아와 예루살렘 성벽의 공사가 끝난 후 광장에 모여 율법책을 읽은 도중 하나님께서 그들의 조상들에게 초막절을 명하셨다는 것을 발견하고 초막절을 지키는 부분입니다.

초막절은 이스라엘 조상들이 애굽 땅에서 탈출하여 광야(사막)에서 천막생활 하던 것을 상기하고(레 23:34-43), 또 땅에 열매를 맺게 하시고 그 땅을 있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축제입니다. 즉 광야의 삶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며, 그들을 돌보신 하나님을 기억하는 동시에 현재 얻는 곡물의 축복에 대한 감사를 하나로 묶어 하나님 앞에서 '기쁨의 시간, 축제'로 보내는 절기입니다. 초막절의 이튿날과 마지막 날에는 특별한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스라엘의 절기와 예배는 출애굽 사건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절기는 인간의 행위가 시발점이 아니고  “하나님과 그분이 하신 일”에 초점이 이 있습니다. 즉 하나님이 시작이고 그 중심이었습니다. 초막절 또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불러 내어, 광야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공동체로 부르신 그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 하나님의 은혜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저는 이 초막절 축제에서 예배 공동체의 모습을 찾고 싶습니다. 광야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임하실 때는 모세를 통해서, 혹은 하나님의 영광이 직접 성막에 나타났고, 이스라엘 백성은 두려워했습니다. 솔로몬의 성전을 짓고, 성전에서 기도드릴 때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 찼습니다. 그래서 제사장들도 그 성전에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영광을 보고 하나님을 경배했습니다.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에는 여전히 거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읽은 말씀에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율법을 듣는 사람들에게 임하셨습니다. 성전이 아니라 각 사람에게 임하셨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만지셨습니다. 사람들은 그들 안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했습니다. 그들 안에서 알 수 없는 무엇인가를 경험합니다. 백성들은 말씀을 들으면서 울었을 뿐만 아니라, 기쁨의 축제가 있었고, 자신과 공동체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과 언약을 새롭게 세웁니다. 즉 예배의 중요한 세가지 요소인-‘하나님을 경배하고 예수님을 찬양하는 행위’와 ‘하나님의 임재’ 그리고 그 ‘임재를 경험한 사람의 반응’-이 오늘 읽을 초막절 축제에서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우리의 예배의 시작은 하나님과 그분의 구원사역, 즉 예수 그리스도에 있습니다. 즉 우리의 예배의 초점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이십니다. 교회에서 드려지는 예배는 사람이 중심이 아니고 하나님이 예배의 중심에 있어야 합니다. 사람은 예배의 행위를 통해 하나님과의 만남/ 하나님과의 교제/ 하나님의 찾아오심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임하시는 하나님의 영, 성령님으로 인해 우리가 하나님을 닮아가는 자들로 성화(transformation)되어 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하나님이 행하신 일/ 하나님의 은혜를 끊임없이 기억하고, 선포하고 그분의 말씀을 통해 우리 자신과 공동체를 다시금 발견하고, 하나님과 함께 기쁨의 축제를 나누고 경험합니다.


저와 은정자매님 그리고 이기헌 형제님이 느헤미야 8장과 9장을 읽을 것입니다. 성령님이 이 곳에 함께 하셔서 살아있고 운동력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영과 마음과 몸을 만지시기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