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제임스와 함께 main street에서 있었던 시크교들의 추수감사 festivalVaisakhi에 갔었습니다. 초대교회로 치면 이방 종교 행사인데 이제는 캐나다에서 이스트 인디아의 문화의 하나로 자리잡은 vaisakhi. 제임스와 함께 길을 걸으면서 거리에서 공짜로 나눠주는 인도 음식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초대 교회 그리스도인들은 이방 종교의 행사를 어떻게 보았을까? Vaisakhi Festival을 즐기고 있는 이들에게 기독교의 구원은 어떠한 의미가 있을까? 많은 인도 사람들이 모여 있는 이 지역에 존재하고 있는 셜브륵 교회는 어떻게 이 사람들에게 다가 갈 수 있을까? 영적 전쟁은 무엇인가? 만약 교회들이 Vaisakhi Festival를 보다 더 적극적으로 도와 준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보다 많은 교회들이 주차장을 이 행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제공한다면 어떨까?

거리에서 나눠 주는 인도 음식 먹으면서 제임스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눠보았습니다. 다른 종교와 문화를 존중하면서도 어떻게 하면 하나님만이 유일하신 하나님이라는 진리를 말할 수 있을까? 이것이 가능할까? 종교 다원주의 시대에 사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유일한 길이라는 진리를 어떻게 선포해야 하는가?

교회로 돌아오면서 저와 제임스는 가장 쉬우면서 어려운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것은 사랑이었습니다.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사랑하신 예수님의 사랑으로 우리 이웃의 종교를 바라보고 보듬어 줄 수 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아브라함 링컨이 말했습니다. 적을 이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적을 친구로 삼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우리는 나와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과는 담을 쌓고 지내지는 않습니까? 쉽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에 의해 우리의 신앙이 손상될까 봐 우리를 보호하는 높은 담을 쌓으면서,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담을 먼저 부스라고 강요를 하고 있지는 않는가? 이런 질문을 해보았습니다. 내가 먼저 나의 종교적 담을 부스고 그들에 다가 갈 수는 없을까? 쉬운 대답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을 우리 마음대로 작게 만들고 다른 종교의 사람들을 멸시하고 있지는 않는가?

어제 거리를 걸으면서 축제에 찾아온 많은 시크교 사람들을 보면서 제 마음에 찾아온 생각들입니다. Vaisakhi 축제를 보면서 우리의 예배에 대해 질문해보았습니다.

예배는 무엇인가? 위키백과 사전에서는 예배를 문자적으로는예를 갖추어 절한다라는 뜻으로, 종교에서 신앙의 대상에게 존경과 숭앙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으로 정의합니다. 기독교에서는 예배(Worship)또는 경배를 하느님께 우리의 마음과 정신을 집중하고, 다른 것을 구하지 않고, 오직 하느님의 임재를 느끼는 것으로 정의합니다.

사전에서 정의하고 있는 것이 예배일까? 모든 종교에게 있어서 예배는 중요합니다. 기독교에서 예배는 무엇보다 중요한 삶입니다. 가인과 아벨도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아브라함은 가는 곳마다 제단을 쌓고 하나님을 부르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배는 하나님께 존경과 드림의 행위였습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시는 이유가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렇게 예배는 개인의 삶에서 시작되어, 가족 공동체로 그리고 이스라엘의 민족 공동체의 중요한 정체성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예배는 내가 누구인가를 정의해 주는 중요한 행위입니다. 예배의 대상이 누구인가에 따라 우리는 내가 누구인지를 발견합니다. 우리의 예배의 대상은 하나님 아버지 한 분뿐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하기에 그분의 자녀이고 백성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면서 또 다른 신을 섬길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두 주인, 하나님과 맘몬 (물질의 신)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고. 우리의 정체성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속해 있는가 아니면 세상의 물질의 신인 맘몬에게 속해 있는가?

우리 안에 있는 유혹은 둘 모두를 섬기고 싶어 하지만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선택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들이라면 우리는 온전히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예배는 정체성의 문제입니다. 내가 누구인가?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방 신들과는 구별된 많은 예배의 예식들을 모세를 통해 말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 또한 예배의 많은 의식들을 만들어 갔습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더 좋은 예배를 드릴 수 있을까? 하나님을 더 기쁘게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래서 사람들은 예배의 의식과 형식에 마음을 두기 시작했습니다. 더 화려함과 더 많은 재물을 들고 하나님의 전에 나오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는 예배로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예배의 의식과 형식을 열심히 만들어 가는 동안 예배에서 중요한 무엇인가가 빠지기 시작합니다.

예배 때에 소란스러운 음악과 춤과 많은 재물이 성전에 쌓이지만 중요한 무엇이 예배에서 사라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이스라엘 사람들의 예배를 보시고 싫증이 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자주 인용하는 이사야 선지자의 말입니다. “무엇하러 나에게 이 많은 재물을 바치느냐? 나는 이제 숫양의 번제물과 살진 짐승의 기름기가 지겹고 나는 수송아지와 어린 양과 숫염소의 피도 싫다. 다시는 헛된 재물을 가지고 오지 말아라. 다 쓸모 없는 것들이다 분향하는 것도 나에게 역겹고, 초하루와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참을 수 없으며 거룩한 집회를 열어 놓고 못된 짓도 함께 하는 것을 내가 더 이상 견딜 수 없다…..

아무리 많은 재물과 의식과 춤이 있다 할지라도 그 무엇이 빠진 예배는 하나님이 더 이상 받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오늘 날의 예배 가운데서도 사라져가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들의 예배에 싫증나신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씻어라. 내가 보는 앞에서 너희의 악한 행실을 버려라. 악한 일을 그치고 옳은 일 하는 것을 배워라. 정의를 찾으라. 억압받은 사람을 도와 주어라. 고아의 송사를 변호하여 주고, 과부의 송사를 변론하여 주어라.”

무엇이 문제입니까? 사람들은 예배를 특정한 장소에서 특정한 날에 행해지는 하나의 의식으로 생각했습니다. 예배를 단지 하나님과의 관계로 생각했습니다. 아니 그 보다 도 하나님은 사람들이 들고 오는 재물을 바라는 신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예배와 그들의 삶은 전혀 상관이 없었습니다. 예배는 예배이고 삶은 삶이었을 뿐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예배하러 나아오는 사람들이 가지고 오는 재물과 행해지는 의식이 아니라 그들의 삶을 말씀하십니다. 삶과 예배는 따로 분리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입니다.

너희가 아무리 수많은 재물을 가지고 내 앞에 나아 온다 할지라도 너희가 내 앞에서 노래와 춤을 춘다 할지라도 너희의 삶에서 이웃이 없다면 너희의 모든 행위는 예배가 아니라, 우상을 섬기는 것이다. 너희가 나를 진정으로 기쁘게 하는 예배를 드리기를 원하느냐? 너희 삶을 살펴 보아라. 너희 이웃을 살펴보아라. 먼저 약한 자의 편에 서서 그들과 함께 공의와 정의를 배우거라. 그리고 나에게 오라. 바로 우리의 삶이 예배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더 많은 헌금을 하기 위해, 더 많은 십일조를 하기 위해 우리 이웃의 아픔을 무시하고 살아간다면, 우리와 함께 일하는 노동자의 필요를 무시한다면 우리가 드리는 재물을 하나님 앞에서 지겹고 헛된 것이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더 많은 재물을 가지고 당신 전에 찾아오는 것을 바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예배는 우리의 매일의 삶에서 연약한 이웃을 돌보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업장에서 더 많은 것을 노동자들과 나누며 사는 것입니다. 너무 많이 나눠줘서 하나님 전에 들고 올 것이 없다면, 하나님은 우리의 예배를 더 기쁘시게 받아 주실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쉽게 범하는 실수 아닙니까? 예배는 특정한 날 교회에 와서 헌금도 많이 하고, 열심히 찬양하고, 열심히 기도하고, 열심히 말씀 듣고, 하지만 교회를 떠날 때 이 모든 것을 교회 안에 내려놓고, 월요일부터는 전혀 이웃과 상관없는 나만의 삶을 살고 있다면 우리는 예배하는 자가 아닙니다.

예배와 삶은 하나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나의 왕으로 고백하는 행위이며, 나의 이웃을 나의 삶 안으로 끌어 들이는 행위입니다. 진정한 예배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과 이웃이 함께 만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변질된 또 다른 예배는 나의 목적을 위해드려지는 예배입니다. 내가 원하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께 뇌물처럼 드려지는 예배의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외면상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 같지만 실제는 나의 탐욕을 채우기 위한 목적의 예배, 이것은 예배가 아닙니다. 이러한 행위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만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죄를 짓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저의 모습에서 많이 행해졌던 실수이기도 합니다. 겉으로는 하나님을 예배하러 가는 듯 보이지만,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매일 찾아간 새벽예배, 저는 참 예배자였을까? 되돌아보면 아닙니다. 내 안에는 여전히 하나님을 나의 목적을 위해 부리고 싶어하는 인간의 탐욕이 예배라는 아름다운 단어에 포장되어 있었을 뿐입니다.

예배를 어떠한 나의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여기는 경우가 그리스도인들의 안에 깊이 자리잡고 있는 모습을 봅니다. 이러한 예배의 중심은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입니다. 이런 예배는 보기에는 하나님 중심적인 것 같지만 여전히 내가 중심이 된 예배 행위를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하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의 목적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에 있습니다.

진정한 예배는 하나님과 나의 친밀한 관계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지난 주에도 말씀드렸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오직 사랑입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 마음, 사랑을 원하지만 우리는 마음을 드리기보다 자꾸만 우리의 가진 것을 드리고 싶어합니다. 이스라엘의 백성처럼, 이웃의 아픔과 슬픔은 상관치 않으면서 더 많은 재물과 더 화려한 예배를 드리기를 더 쉬워합니다.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을 다 드리면 왠지 무엇인가를 다 빼앗길 것만 같은 두려움이 있습니다.

예배의 모든 근원은 사랑에서 시작됩니다. 사랑이 없이 드려지는 모든 예배에 대해 하나님은 싫증이 나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아무리 화려한 음악이 있고, 아무리 아름다운 춤이 있고, 아무리 많은 재물이 있고, 아무리 웅장한 교회의 건물이 있다 할지라도 우리 안에 사랑이 없다면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 시끄러운 괭과리와 징의 소음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그 사랑이 어디에서 시작되었습니까? 사도 요한은 말합니다. “사랑은 하나님에게서 난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다 하나님에게서 났고, 하나님을 압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드러났으니, 곧 하나님이 자기 외아들을 세상에 보내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그로 말미암아 살게 해 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렇게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도 그 사람 안에 계십니다.”

하나님 그 분이 사랑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랑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사랑 그 자체이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른 것을 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랑에 우리가 동참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배입니다.

예배는 사랑의 행위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이웃을 사랑하기에 드러나는 모든 행위가 바로 예배입니다. 예배와 사랑은 떼어 놀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한다 하면서 우리 안에 참 사랑이 없다면…. 사랑한다 말하면서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가 없다면 우리는 거짓말 하는 자들입니다. 더 심하게 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예배하도록 부르셨습니다. 그 예배는 단지 특정한 장소에 모여 특정한 날에 드려지는 예배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배로 부르셨다는 의미는 우리를 사랑의 관계 안으로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예배는 사랑의 행위입니다.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기 아들을 보내어 우리의 죄를 위하여 화목제물이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온전한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지는 예배는 하나님의 사랑에 근원을 둔 우리의 사랑을 고백하는 모든 행위입니다.

그 사랑은 하나님을 향한 나의 사랑과 이웃을 향한 나의 사랑이 예배에서 온전히 이루어 지는 것을 말합니다.

예배는 마음을 다하여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계명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계명이 온전하게 우리의 삶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행위입니다. 예배는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다른 것이 아닌 그분의 사랑 안으로 부르셨습니다. 우리와 온전한 사랑을 나누기 위해세상을 향한 온전한 사랑을 이루기 위해 우리를 예배로 부르셨습니다.

예배와 삶은 하나이며, 예배는 사랑입니다. 이번 사순절을 지나면서 제게 다가온 것은 하나님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예배하는 자여, 사랑하며 삽시다.


**시크교에 대해서는 사랑방에 요약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