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현재 연변 과기대에서 섬기고 있는 조원상 교수님의 글 입니다. 지난주 말씀을 읽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이곳에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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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 자유!

I. 짜증

하루 종일, 짜증나는 날이었습니다. 아침 8시부터 저녁 6시까지, 컴퓨터에 프로그램 설치하고, 소프트웨어 정리하고, 고치며 보내는 날. *왜 컴퓨터는 말을 할 수 없을까* 하며 신경질이 퍽퍽 나는 날. 논문 통계분석을 위해서 컴퓨터를 늘 써야 하는데, 프로그램 다운로드하다가 문제가 생겨서, 새로 포맷하고, 고치고... 벌써 며칠 전부터 생긴 일이어서, 오늘 오전에는 끝장을 보고, 오후에는 논문을 쓰려고 했는데, 컴퓨터 고치는 일로 하루가 갔습니다.

저녁에, 처가 성경 공부를 가기 때문에, 제가 들어오자마자, 아이들을 맡기고 나갔습니다. 아이들 저녁 먹이고, 아이들 컴퓨터 보는 사이, 피곤했는지, 한 10분간 잠깐 잠이 들었습니다.

큰 애 찬식이는 지난 2년간 (그 애의 반평생) 동안, 두 가지를 아주 아주 좋아해왔는데, 하나는 화장실이고, 또 하나는 엘리베이터입니다. 어떤 건물이든지 들어가면, 화장실에 적어도 3번은 들어가서, 직접 사용해보시고, 물도 내리시고, 손도 씻어 보셔야 합니다. 엘리베이터가 있으면, 적어도 5번은 타봐야 합니다. 이 두 가지 만 집중적으로 좋아해서, 다른 건 잘 모르지만, 화장실 구조 (좌변기, 입?? 물 내려가는게 쎈서로 자동 조절되는지, 아니면 수동식인지, 물탱크가 안에 있는지, 밖에 있는지, 나프탈렌의 색깔, 방향제의 구조 등등)와 엘리베이터의 구조 (문이 어느 쪽으로 열리고 닫히는지, 환풍기의 위치, 어떤 스위치가 비상 스위치인지 화재 시 잠그는 열쇠인지, 동네 엘리베이터가 있는 각종 빌딩들의 지상 및 지하 층수, 엘리베이터가 위에서 당기는 방식인지, 밑에서 올리는 방식인지, 누르는 버튼의 B, GW, M이 무슨 뜻인지 - 읽는 그대도 잘 모르겠지?) 에 대해서는 빠삭하게 압니다.

길을 같이 걸어가다가도, 혼자 중얼중얼, 최근에 본 화장실이나 엘리베이터의 구조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보다가, 갑자기, 내게 퀴즈를 냅니다. "아빠, 왜 그 주차장의 엘리베이터는 1,2,3,4층인지 알어?" "도서관 화장실의 물탱크는 밖에 있어? 안에 있어?" "몰라." 그러면, 준비한 대답들을 줄줄이 얘기합니다. 걔 4살 때 생일에 플라스틱으로 된 조그만 변기통을, 애 엄마가, 선물을 했으니까요 - 그거 찾느라 한참 고생했답니다. 얘가 부자가 된다면, 아마 이런 집에 살거예요. 10층짜리 건물인데, 엘리베이터가 머무는 각층마다 다른 모양의 변기통이 들어있는, 그런거.... 정말 "드림 컴 츄루!" 일겁니다.

잠깐 잠이 들었나 싶었나 했는데, 애가 깨웁니다. "아빠, 학교 EMU (학생 회관) 에 있는 엘리베이터 타러 가자, 응!" "으...응, 그래, 그럼 그러자..." 이 아이의 엘리베이터에 대한 사랑을 아는 나는 될 수 있으면, 애 소원을 들어주려 합니다. 아이 둘을 차에 태우고, 10분 거리에 있는 학교로 향했읍니다. 오늘 따라 농구 경기로, 학생 회관 근처에는 차들이 많아, 먼 곳에 차를 세우고, 아이 둘을 데리고, 학생 회관에 들어갔습니다. 물론, 엘리베이터를 타러 가기 전에 발견한 화장실에서, 찬식이는 들어가서 1. 소변보고, 2. 물내리고, 3. 아빠 소변 보는 것 권유하고 "아빠가 오줌 누면 좋아" 4. 관람하고 , 5. "아빠 물내려야 돼!" 잔소리 하시고, 6. 비누질해서 손 씻고, 7. 손말리는 종이 뽑아서 손닦고, 8. 휴지통에 직접 넣는 풀코스를 했습니다.

몇 번 엘리베이터를 탄 후, 학생 회관 지하에 있는 조그만 카페테리아에,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음료수하고 도우넛을 사 줄 생각이었습니다. 카페테리아에 들어갔는데, 둘째 애 윤하가 의자 두개를 붙잡고 그네를 타다가, 의자가 양쪽으로 빠지면서, 그냥 얼굴로 땅바닥을 헤딩했습니다. 입술 아래 위에서 피가 제법 많이 나고, 아이는 소리를 높여서 웁니다. 애를 달래고, 피를 닦고 보니, 가뜩이나, 먼젓번에 아파서 일그러진 얼굴이 더 말이 아닙니다. 집에 가야할 것 같습니다. 큰 애를 설득하고, 무거운 둘째 애를 안고서는 한참을 걸어서 차를 파크한 데에 도착하니, 둘째 애의 한 쪽 신발이 없습니다. 다시 애를 안고, 큰 애 손을 잡아, 학생 회관까지의 길을 되짚어서 가는데.... *정말 오늘 왜 이럴까* 싶더라구요....



II. 재즈

돌아간 카페테리아에서 윤하의 신발을 쉽게 찾았습니다. 그런데, 카페테리아 구석에서, 학생들이 악기들을 갖다 놓기 시작합니다. 물어보니, 8시 반부터, 재즈 공연이 있을 거랍니다. 애들에게 쵸코 우유를 하나씩 물리고는, 자리를 잡아, 음악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피아노, 드럼, 트럼본, 재즈 기타, 그리고 베이스가 한 조가 된 학생 밴드였습니다. 카페테리아에 불이 꺼지고, 밴드가 있는 구석에 조명이 켜지기 시작하면서, 마음이 아주 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학생들의 복장부터가 맘에 들었습니다. 정장이 아닌, 이 곳 서부 풍의 캐쥬얼 차림에, 베이스 기타치는 애는 대머리, 트럼본 부는 동양 애는 꽁지머리, 드럼 치는 남자애는 귀걸이를, 리드 기타는 빵덕 모자를..., 트럼본이 중심이 된, 재즈곡들을 연주하는데, 잘 연주하는 건 아니었지만, 하루 종일 지친 나에게 휴식이 됩니다. 사실, 연주가 두 곡 끝났을 때, 윤하가 "아빠, 음악이 너무 시끄러워" 라고 해서, 자리를 일어섰고, 연주 도중에도, 찬식이가 간간히 이것 저것 질문 "아빠, 저 아저씨는 왜 눈을 감고 있어?" " 저 아저씨는 왜 고개를 흔들어?" 등등 분위기가 음악듣기에 최상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 10분이 안되는 시간 동안, 나는 참 쉬었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그리고, 차로 집으로 올 때, 아이들을 재우고 난 후에도, 그 쉰 느낌으로 밤시간이 좋았습니다. "그 편한 느낌, 그 쉰 것 같은 느낌이 무엇이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마음에 글쓰고 싶은 마음이 생겨 이렇게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그건, 생각해보니, 자유의 느낌이었습니다.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 분방한 옷차림, 그리고, 일정한 화음 안에서 계속 변주가 계속되는 다섯 개의 악기들. 그리고, 음악에 맞춰 고개를 흔들고, 흥을 내는 일, 그 분위기 속에서 아이들과 함께 있는 것..., 생활의 일상을 잊는 것...

요한은 그의 복음서에서 "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라고 대담히 얘기합니다. 여기서 진리란, 영어 성경을 보면 더 명확해지는데, 그건, 복음 - 예수께서 죄인들을 위해서 이 땅에서 오셔서, 대신 죄를 지시고 죽으셨고, 누구든지, 그 것을 믿고 감사함으로 받는 이는 하나님의 아들 딸이 될 권한을 주셨다 - 를 의미합니다. 성경의 많은 글들과 많은 신학 서적이, 사실은 이 한 줄의 복음으로 정리됩니다. 간단하고 쉽습니다. 그리고, 그 이상의 짐이 없습니다. 요한 복음은 또, 예수님께서 이 땅 위에 오신 이유는, 우리들이 삶을 풍성히 누리게 하기 위해서라고 얘기합니다. 예수님도, 예수님께서 주시는 멍에는 쉽고 가볍다 라고 얘기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목마른 사람에 주어지는 샘물, 영원히 사람에게 심겨져, 계속 시원케 해주는 생수라고 얘기합니다.

그렇습니다. 복음은, 성경에 의하면, 자유입니다. 그 쉼을 주었던 재즈 음악같은 쟈유입니다.

그런데, 이걸 내가 마음으로 알게 된 건, 부끄럽게도, 최근 3년간 즈음의 일입니다. 나는 예수믿는 것이 많은 일을 해야 하는 줄 알았습니다. 또, 주변의 다른 사람들에게도, 많은 일을 해야 한다고 이 것 저 것을 지켜야한다고 마음에 부담을 주기도 했습니다. 내 스스로도 많은 것을 공부하고, 지키고, 절제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동안, 주변에서 공동체 운동하다가, 마음이 힘들어져서, 영어로는 "Burnt out"라고 하는데, "다 타버려서, 소진하고 지친" 사람들을 가끔 봐왔습니다. 너무 너무, 하라는 게 많고 요구가 많아서, 좋은 일인 줄은 알지만, 교회나 선교 단체에서 일하는게 힘들고 지쳐서 아예 기독교를 떠나는 사람들을 보곤 했습니다. 생각해보면, 나도 다른 이에게 너무 많은 기준들을 세워서, 힘들게 했던 것 같습니다. "형제여, 자매여, 나의 그러했던 것을 용서해주오. 몰라서 그랬다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의 상한 마음과 회개하는 심령입니다. 우리를 기꺼이 있는 모습 그대로 - 과거의 죄들과 실수, 현재의 바보같은 짓들, 그리고 미래에 있을 반복될 모든 것들 까지도 - 사랑하고 즐거이 받으십니다. 우리는 그 분 안에서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자세히 아시면서도 사랑하시고, 뿐만 아니라, 우리를 위해 장래 계획을 세우고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한 때는 음악을 즐기는 일 조차도 부끄럽게 생각하고, 악기를 연주하거나, 노래하는 걸 시간 아까운 일로 생각하고, 그 시간에 성경을 더 보고, 전도하고 그래야지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혹시 그렇게 나와 같이 어리석은 생각을 할 사람들을 위해 얘기하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금하신 것들을 제외하고는, 하나님이 인생에 주신 것들을 즐기세요. 주변 사람들과 기쁘게 시간 보내고, 재미있는 일들을 계획하고, 그리고 쉴 때 기쁘게 쉬세요. 교회에서 또 직장에서 가정에서 봉사하는 일도 기쁜 마음에서 하세요.

하나님께서 꼭 중요하다고 말씀하시지 않는 일에 - 세상의 야망과 인정, 더 많은 재물과 욕심, 종교적인 야심, 자기 의, 율법적인 신앙생활 - 소진하느라, 자유를 잃지 맙시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자유를 누리세요. 교회봉사를 좀 못하더라도, 충분히 헌금을 못 하더라도, 너무 바빠서 교회에 못나오더라도, 개인 경건의 시간을 자주 못 갖는다하더라도, 괜챦습니다. 돈이 좀 없어도, 장래가 좀 불확실해도, 세상 사람들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직업을 갖고 있어도, 좀 뚱뚱하고 잘 생기지 않았더라도 괜챦아요. 하나님의 우리 사랑하심을 알고, 그 사랑에 감사하고, 평화를 갖는다면 말이죠.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인생을 다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좋은 목자로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분께서 허락하신 것들을 즐길 줄 아는 사람에게서, 하나님이 보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요한은 요한 1서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부담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라고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일이 무엇이냐"고 묻는 제자들의 질문에 예수님은 "나와 함께 있는 것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다" 고 대답하신 것입니다. 세상이 세운 기준, 교회가 세운 기준, 부모님이 세워준 기준들, 자신이 세운 우상들이 세운 기준들 - 종교의 이름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면, 하나님께서 괜챦다 하시면, 그런 기준들로 부터 자유합시다. 하나님의 사랑을 안다면, 하나님께서 괜챤타 하시면, 하나님 안에서 평안하고 희망을 갖는다면.

복음은 바로크 음악이 아니라, 아주 기본적인 원칙을 지키면서, 나머지에서는 마음껏 자유롭게 연주할 수, 창조할 수 있는, 재즈와 같은 자유입니다.





아! 자유! 자유!

숲의 맑은 공기와 같이 쉼을 주는 자유!




오레건 유진에서 원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