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와 구제, 무엇이 중요한가?

선교도 구제도 "나눔'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자원을 “나눔”이라는 부르심을 따라 사용할 때, 성경에는 선교냐 구제냐 하는 구별이 없었습니다. “사랑의 나눔”은 내게 받은 은총을 – 복음과 물질 모두를 포함해서 –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이겠지요.

일반적으로 교회에서 선교와 구제를 구분하고 우선순위를 선교 쪽에 두는 경향이 있습니다. 심지어 구제의 목적이 선교라고 말하기도 하지요. 구제의 목적을 선교라고 한다면, 선교의 열매가 없는 구제를 헛된 투자라고 말하겠지요. 제가 한국에서 소외층 사역을 할 때, 어떤 분은 왜 교회를 세우지 않고 사회복지 프로그램을 운영하느냐고 비판적으로 물었었습니다. 그분 생각에 복음을 전하지 않는 사회복지 프로그램은 의미가 없었던 것이지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구제란 순수하게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돕는 것이고, 그 외에 목적이 필요 없습니다. 병든 사람을 치료하고 장애인을 돕는 것, 굶주린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는 것, 헐벗은 사람을 입히는 것, 감옥에 갇힌 사람을 돌아보는 것, 외로운 사람을 위로하는 것은 사랑 때문입니다. 어떤 목적이 있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이며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이라는 동기로 충분합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알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그것이 구제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구제가 선교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구제나 선교나 “나눔”이라는 것을 상기하고 싶습니다. 내가 가진 것을 갖지 못한 사람과 나눈다는 것, 사랑을 동기로 “우리”라는 울타리를 넓혀서 “큰 가족’을 생각하며 나누는 것입니다. 물론 물질 뿐만 아니라 기쁜 소식도 나누고 싶겠지요. 가족은 사랑을 나눕니다. 부모는 자녀들에게 아낌 없이 물질을 나눕니다. 자녀에게 사상도 정신도 꿈도 나누고 싶겠지요. 복음을 지닌 부모는 복음을 나누고 싶겠지요. 그런데 자녀가 사상도 정신도 꿈도 배우지 않고, 복음에도 무관심하다면, 그동안 물질적으로 나눈 사랑이 헛수고일까요? 아닙니다. 그것과 상관 없이 아픈 아이를 돌보고 배고파 하는 아이에게 먹을 것을 줍니다. 배울 기회도 줍니다. 자녀가 아니라, 나이 드신 어른들과 형제들에게도 당연히 그래야 하지 않을까요?

전세계적인 구호 사역 단체인 MCC는 구제 구호 사역에 열심을 내지만 복음을 전하지는 않습니다. 복음 전파가 옳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헌신과 나눔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가 전해지고 예수님의 이름이 높여지기를 기대하지만, 입술을 열어 적극적으로 복음을 전하지는 않습니다. 복음 전도를 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습니다. 이유는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순수한 “사랑의 나눔”이라는 목적에 충실하기 위함입니다. 선교를 목적으로 구제한다는 오해를 사고 싶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런 소극적인 태도에 비판적인 목소리가 외부와 내부에서도 있었지만, 세월이 많이 흐른 오늘날 MCC 사역은 모슬렘 지역, 공산권, 분쟁 지역 어디서나 환영 받고 있습니다. 다른 기독교 단체들이 역사 속에서 구제를 선교의 도구(?)로 삼았기 때문에, 그리고 도움과 함께 착취와 지배라는 고통도 함께 전해 주었기에, 세계 곳곳에 반 서구, 반 기독교 감정이 심각하게 높습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교회의 본래 목적에 충실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던 MCC 사역이 주님의 이름으로 아름답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사랑도 어떤 다른 목적을 갖지 않을 때 아름답듯이, 구제와 선교를 구분하지 않고 “사랑의 나눔”이라는 순수한 동기로 이야기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