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은 “우리”를 넓혀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살림살이를 유지 운영하는 것보다 바깥의 필요에 더 마음을 쏟을 수 있을 때, 그 교회는 더 건강할 것입니다. 하지만 “넓힘”과 “나눔”이라는 아름다운 참여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요소들을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1) 내부에 고통이 되지 않도록

바깥으로 선교와 구제에 열심인 교회는 생동감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교회 안에 도움을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는데도 바깥으로 활동에만 헌신하고 있다면, 문제일 것입니다. 마치 집안은 돌아보지 않고 교회 일에 헌신하는 사람이 문제가 있듯이, 혹은 자기 건강은 돌보지 않고 바깥 일만 하다가 쓰러지는 사람이 문제가 있듯이 말입니다.  “나눔”은 바깥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내부의 고통에 둔감한 채 바깥으로 열심을 내는 것은 결코 진정한 나눔이 될 수 없습니다. 가까이 있는 필요, 안에 있는 필요에도 민감해야 합니다. 누구도 소홀히 여겨지지 않도록 서로에 필요에 민감하고 각 사람의 목소리를 존중하며 함께 마음을 모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2) 결코 비교와 경쟁심이 동기가 되지 않도록.

헌금도 구제도 자원하는 마음과 즐겨 하는 마음이 동기가 되어야 하겠지요. “나눔”의 동기가 순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남들이 봐 주기를 기대하고 남들의 평가에 영향을 받는 구제처럼, 서로 비교하고 경쟁하며 바깥으로 활동을 열심히 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동기가 순수하도록 언제나 체크해야 합니다.

3) 물질 외에 우리의 자원(시간, 기술, 땀)이 제외되지 않도록

나눔이 “우리”를 넓히고 우리에게 주어진 자원을 나누는 것이라면, 결코 헌금만으로 충족될 수 없습니다. 가끔 돈이나 보내주는 것으로 할 일을 다했다고 말하는 부모가 없듯이, 진정한 도움은 “함께 있어 주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소중한 자원이 많이 있습니다. 시간도 나누고, 기술(전문성)도 나누고, 땀도 나눌 때 더 아름답겠지요. 물질을 나누는 것 이상으로 자원봉사자로 섬기는 사역에 참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4) 도움을 받는 사람들이 의존적이 되지 않도록

메노나이트 구제 구호 사역은 초기에는 단순한 도움에서 시작되었지만, 현재는 방향이나 정책이 보다 건강하게 잘 마련되어 있습니다. “배움”에 소개되어 있는 단체들 활동을 보더라도 세상의 필요에 민감하면서도 어떻게 돕는 것이 보다 도움이 될지 연구하며 바람직한 방향으로 사역을 정리해 왔습니다. MEDA에 소개된 것처럼, 진정한 도움은 “상대방이 스스로 뭔가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의존적인 인생이 되는 것은 하늘의 뜻이 아닙니다. 아이들도 너무 의존적이 되지 않도록 양육하듯이, 구제도 그렇습니다.

5) 지배하고 가르치는 마음을 갖지 않도록

주는 사람이 배울 수 있을까요? 더 가진 사람이 겸손할 수 있을까요? 어렵지만 그래야 합니다. 사실 우리는 청지기요 통로일 뿐 주인이 아닙니다. 내 것이 아니라 그분의 것이라는 고백으로, “나는 단지 전달하는 통로입니다”라는 겸손한 태도를 선교와 구제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가져야 합니다. 실제로 가르치러 갔지만 오히려 배우고, 주러 갔지만 오히려 받은 것이 많고, 도우러 갔지만 오히려 도움을 받았다는 고백이 “참된 나눔”의 간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