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돈을 필요로 하시지 않는데, 왜 헌금을 하게 되었을까요? 헌금의 기초로 소개된 구약 성경의 십일조가 어떤 목적으로 사용되었는지 이해하면서 토론을 시작하고 싶습니다. 십일조는 제사직을 맡은 레위 지파와 가난한 사람들을 지원하는 데에 사용되었습니다. 초기에는 성전이 없었기에 건물 유지 관리에는 따로 헌금이 필요하지 않았겠지요. 성전이 건축되고 그 이후에는 당시 사람들의 십일조 외에 다른 헌신들(헌물, 노력 봉사 – 강제 동원을 포함함)이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의 공동체, 그리고 초대 교회는 어떻게 헌물과 재정을 관리했을까요? 유대교로부터 분리된 이후에는 분명 크리스천들이 헌금을 유대 성전으로 보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초기에는 각 가정에 모였고 전임 사역자도 없었기에, 따로 건물 유지나 사역자 후원을 위한 운영비가 들지 않았을 것입니다. 후에 별도의 교회 건물을 갖게 되고 전임 사역자가 세워지면서, 그 필요 때문에 헌금이 모여지고 또 사용되었겠지요.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 어려움에 처한 다른 지역을 돕기 위해 또한 선교를 위해 헌금이 모여지고 사용되었을 것입니다.

결국 헌금은 하나님 백성의 종교 생활을 유지 운영하기 위해,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일과 선교를 위해 모여지고 사용되었습니다. 오늘의 표현으로 말한다면, 공동체 내부의 영적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운영비”와 공동체 외부의 필요에 반응하기 위한 “선교와 구제 후원비”입니다. 간단히 “운영”과 “나눔”이란 단어를 사용하겠습니다.

그렇다면 건강한 운영과 나눔을 위한 길을 생각해야 하겠지요. 개인적으로도 우리 크리스천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로서, 성령이 거하는 성전으로서, 자신의 물질 생활에 대한 구별된 선택이 있을 것입니다. 개인과 가족의 삶에도 “운영비”가 있고 “후원비”가 있겠지요. 개인적으로도 가능하면 운영 예산을 줄이고 후원 예산을 늘려 가는 것이 바람직하게 느껴지듯이, 특별히 신앙 공동체인 교회도 운영 예산을 줄이고 후원 예산을 늘려 가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전에 1/3 정도가 순수하게 바깥으로 향한 “나눔”에 사용되는 것이 건강하다는 의견을 표현한 적이 있습니다. 그것을 개인적인 삶에까지 적용하기는 어렵다 하더라도, 그리스도의 공동체인 교회의 삶은 1/3 이상도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운영”과 “나눔”의 건강한 균형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을 듣고 싶네요. 그리고 “나눔”을 이야기할 때 크리스천들은 “선교”와 “구제”를 구별하고 우선순위를 정하는 경향이 있는데요, 거기에 대한 활발한 이야기도 듣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