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두렵고 떨리는 마음"에서  

메노나이트 선조들이 역사 속에서 고민해 왔던 것을 좀 나누고 싶습니다. 우리 한국 크리스천들은 신실한 크리스천의 기업 모델로 부도덕하지 않고 세금도 잘 내는 정직한 경영, 그리고 수익을 사회에 적극적으로 환원하고 선교 사업에도 적극적인 기업을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정직(도덕적이고 법을 지키는 경영)과 업적(사회 환원과 선교) 둘 중 후자를 더 중요하게 생각해서 전자는 때로 눈감기도 하지요. 그러나 그 후유증은 심각한 것이고 그래서 지금은 정직한 경영을 높이 사고 있습니다. 서구의 신실한 크리스천 기업가들이 그런 수준이지요.

메노나이트 선조들은 우리가 생각도 해 보지 않은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비즈니스를 하더라도 "이 비즈니스가 사회를 건강하게 하는가 아니면 혹시 병들게 하는 것은 아닌가? 이윤을 얼마나 남겨야 정당한가? 현재 경영에 혹시 어떤 어둠이 없는가? 하나님 나라의 가치와 일치할 수 있는가?" 등의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런 질문들은 공무원들의 파워가 하늘을 치솟았던 시기에는 메노나이트로 하여금 공무원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을 갖게 했고, 과소비와 유행을 따르는 품목을 비즈니스에서 제외했고, 환경오염과 건강을 해치는 비즈니스를 선택하지 않게 했고, 제 3세계에 고통을 주는 다국적 기업형 운영도 선택하지 않게 했습니다. 흠도 점도 없을 수 없었겠지만, 혹시 무지해서 누군가에게 고통을 안겨다 주지는 않을까 염려했습니다. 그런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비즈니스를 생각한 그들은 "거룩한 근심"을 지닌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고민의 흔적을 읽으며 저는 고개가 숙여졌습니다. 부르더호프라는 공동체는 고민 끝에 선택한 비즈니스로 장애인용 기구, 아동용 가구를 만드는 선택을 했지요. 선택의 동기는 "돈이 될 것인가" 대신에 "과연 사회에 건강한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인가"입니다.

많은 비즈니스는 경제가 돌아가게 하기에 사회에 도움이 된다고 말하기도 하지요. 그러나 도움이 아니라 고통과 어둠을 가져다 주는 측면도 많지요. 과소비, 건강을 해치는 패스트푸드, 중독성, 환경오염, 물질주의 등입니다. 비즈니스는 이윤을 추구합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비즈니스는 무서운 경쟁의 흐름 속에 있습니다.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생각하게 됩니다. 이윤 추구가 목표이기에 환경과 공동체에 대한 배려는 언제나 뒤로 밀려나기 쉽습니다. 막상 시작하고 나면 되돌아가기 어렵습니다.  

우리의 눈에는 가리워져 있지만, 아미쉬나 러다이트 운동을 하는 사람들, 환경 운동가들의 눈에는 보이는 그런 어둠이 혹시 내가 경영하는 비즈니스에 있지 않은지 돌아본다는 것은 지나친 요청이 될까요? 청부론을 생각하며, 단지 우리가 실천하는 선한 나눔에 혹시 가려진 작은 어둠, 내가 미처 보지 못한 작은 어둠도 없기를 바랄 뿐입니다. 아무리 작아 보이는 불의라도 선행으로 덮어 버릴 수는 없기에 …

청부론이 목회자의 입에서 나온 말이기에 교회 안에 있는 경제 구조에 대해 잠깐 말하고 싶네요. 경제 정의, 분배와 관련하여 교회 내 직원 대우에 관한 원칙은 어디서 배워서 적용한 것일까요? 자유 자본주의 경제 논리가 고민 없이 정착되었다고 생각됩니다. 능력과 지위에 따라, 전문성과 탁월성에 따라 분배됩니다. 거기에 "성직자"라는 부가된 값이 있습니다. 자연히 담임 목회자와 전도사, 사무원, 사찰 등의 봉급은 하늘과 땅 차이가 됩니다.

훌륭한 목회자는 교회가 주는 넉넉한/많은 수입을 감사하게 당연하게 여기며, 넉넉하게 자선하며 자신은 검소하게 사는 사람일까요? 아니면 자유 자본주의 경제 논리 대신에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교회 안에 적용해서, 모두가 "사역자" "성직자"라는 고백 속에 탁월성과 신분에 의한 차이가 아니라 필요에 의한 배려로 재정 사용 원칙을 변경해야 할까요?

두렵고 떨림으로 혹시 우리가 주변 세상의 흐름과 가치를 별 저항 없이 고민 없이 따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고 싶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먼저 바꿀 수 없습니다. 국가나 사회의 경제 구조를 바꾸라는 소명을 받은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는 크리스천들의 모임인 교회가 그분의 가르침을 따라 하나님 나라를 실현하려고 실험하는 곳이 되어야 함은 분명합니다. 산 위의 동네로 세우신 주님의 뜻을 기억하여, 모델 하우스가 되려는 거룩한 몸부림을 하자고 모든 교회에 말하고 싶습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