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빈, 청부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봅니다.

1. "나눔"에서

청빈이란 가난한 사람에게 붙여진 이름이 아니라, 가난하지 않게 살 수 있지만 가난을 선택한 사람들에게 붙여진 이름입니다.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생각해 보면, 이유도 다양하겠지요. 무소유의 가벼움과 자유로움을 추구한 사람도 있겠고, 물질을 악한 것으로 여기는 금욕주의자도 있겠지요. 한편 "나눔"이라는 가치 때문에 검소한 삶을 선택한 사람도 있겠지요. 제 생각에 가장 예수님의 가르침과 가까운 것은 "나눔"입니다.

"나눔"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누구와 얼마나 나누느냐 하는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한 지붕 아래 사는 가족은 건강한 가정이라면 아낌없이 나눕니다. 내 것, 남의 것이 두드러지지 않습니다. 누구도 좀 더 가진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가진 것이 있다면 동등하게 나눠야 한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 때문이지요. 다른 지붕 아래 살면 "우리"라는 의식이 작아져 버리지요.  

메노나이트 크리스천들이 일반적으로 한국 크리스천들보다 퍽 검소하게 삽니다. 차이가 무엇일까요? "우리"라는 생각의 크기 차이입니다. 한국 크리스천들은 재난이나 기근, 가난이나 장애에 대해 보거나 들으면 뭉클해서 사랑을 나타냅니다. 평소에는 안 보이니까 일반 세상 사람들처럼 보다 편한 삶을 추구합니다. 그리고 가족에 대한 특별한 (때로 지나친) 사랑은 "우리"라는 울타리가 좁다는 것을 많이 보여줍니다. 신실한 메노나이트 크리스천들은 마치 가난과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을 언제나 보고 있는 사람처럼 여겨질 때가 있습니다. 특별 뉴스가 없어도 지구촌 저편의 가난한 사람들을 기억하며 선택합니다. 보이지 않는 데도 마치 "가족"처럼 "우리" 속에 포함시켜 생각합니다. 그래서 소비 생활이 매우 검소합니다.

부유한가 가난한가 문제가 아니라, 나의 "우리"는 얼마나 넓은가 돌아보고 싶습니다. 지구촌 사람들을 한 지붕 가족으로 본다면 많이 달라지겠지요. 그래서 환경에 대한 생각도 나누게 된 것 아닐까요? 내가 생각하는 "우리"가 폭넓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의 "우리"는 퍽 컸겠지요?

예수님은 부유한 삶을 사실 수도 있었는데, 왜 하필 가난을 선택하셨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 선택으로 예수님은 부유한 사람들의 눈에는 못마땅해 보였어도, 가난한 사람들의 친구가 되셨습니다. 부유한 채 가난한 사람들의 친구가 되실 수는 없었을까요?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은 비슷할 때 주어집니다. 밀튼 허쉬 같은 분은 고아와 빈민들을 가족처럼 생각해서 도왔을 것입니다. “우리”라는 울타리 안에 고아와 빈민을 넣은 훌륭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고아들이나 빈민들도 그를 “우리” 안에 넣어서 생각했을까요? 아니면 “우리”를 도와주시는 훌륭한 어른, 천사, 위대한 분, 하지만 “우리와는 다른 사람”으로 생각했을까요? 만약 예수님이 부유하셨다면 가난한 사람들의 친구가 되시지 못했을 것입니다. 가까이 가기 어려운 분이었겠지요.

나의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이 어디서 강하게 느껴지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때로 나와 너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불편하지 않습니까? 나보다 너무 가진 사람과 함께 있어도 불편하겠지만, 너무 없는 사람과 함께 있어도 불편합니다. 뭔가 서먹한 마음이 있지요. 그래서 잠깐은 함께 있지만, 오래 함께 있기는 어렵지요. 그래서 교회도 수준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이는 경향이 있는지 모릅니다.  

예수님의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은 분명 부유한 사람들보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있었습니다. 이유는 편드는(?) 아름다운 사랑 때문입니다. 사랑이 풍성한 가정에서 부모는 약하고 장애가 있는 자녀에게 더 마음을 쏟습니다. 성숙한 형제들도 병들고 약한 형제가 있으면 나 몰라라 하지 않고 같아지려고 하고 장애와 병을 함께 짊어집니다. 그렇게 충분히 함께 짊어질 때 "우리”라는 고백이 가능합니다.

분배의 불균형으로 갈등과 다툼이 있는 지구촌에 생명과 평화를 전하기 위해서는 고통받는 사람들의 친구가 되어야 합니다. 진정한 친구는 단지 물질로 돕지 않습니다. 가끔 만나지 않습니다. 진정한 친구는 함께 있습니다. "우리”라는 연대감으로 같아지려고 합니다.

가난한 사람들과 오래 함께 있어도 불편해 하지 않는 사람, 가난한 사람들도 나와 함께 있으면 편하게 생각하고 나를 친구로 여겨주는 그런 수준의 삶을 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