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를 구속(Redemption)하려 선택한 예수님의 죽음과 동일시할 수는 없어도, 모든 죽음에는 구속의 의미가 있습니다. 가족 중에 한 사람이 죽음을 맞이할 때 흩어졌던 가족들이 함께 모이고 닫았던 마음을 열고 화해할 수 있습니다. 지역에서 소외되었던 한 사람의 외로운 죽음이 지역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새로운 변화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분신 자살한 한 노동자의 죽음이 사회를 도전하여 회개와 함께 건강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게 되지는 않습니다. 죽음이 구속, 곧 선한 변화를 가져오려면 무엇보다 남은 사람들의 마음과 태도가 중요합니다. 결코 누군가를 향해 비난의 화살을 돌리지 않고 오히려 잠잠히 스스로 자신을 돌아볼 수 있을 때, 그리고 서로를 존중하며 겸손히 다가갈 때, 그때에만 죽음은 생명을 위한 축복의 통로가 됩니다.

안타깝게도 현실에서 죽음은 구속이 아니라 저주를 가져올 때가 많습니다. 죽음이 가족들 사이를 더욱 갈라놓고, 지역 사람들이 서로 탓 돌리며 마음의 문을 닫게 하고, 사회에 증오와 적대감의 장벽을 더욱 높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는 이유는 남은 사람들이 비난의 화살을 서로에게 쏘아대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의 어떤 죽음이든지 가해자 혹은 비난 받을 사람이 두드러지게 보입니다. 그렇기에 그 대상을 압박하고 정죄하는 것은 한편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나 그 결국은 구속이 아니라 저주를 가져올 뿐입니다.  

그렇기에 한 사람의 죽음 앞에서 잠잠히 자신을 돌아보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누군가에게 비난과 정죄의 말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람들은 다른 이의 죽음 앞에서 미안해 하고 겸손해집니다. 가르쳐주지 않아도 배웁니다. 그렇기에 각 사람이 자신을 돌아볼 수 있도록 잠잠해야 합니다. 물론 남은 사람들 모두에게서 성숙함을 기대할 수는 어렵습니다. 모두 미숙하며 미완성인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죽음에 대해 판단하기 보다는 잠잠히 그리고 겸손히 자신을 돌아보도록 돕는 리더들이 더욱 필요합니다.

한편 죽음을 잘 준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면, 의도적으로 죽음의 길을 걷기로 선택한다면, 남은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칠 것이기에, 깊은 사랑의 배려가 필요합니다. 남은 사람들은 고인이 남긴 메시지에 영향 받습니다. 그 메시지를 통해 남은 사람들이 서로 용서하고 화해할 수도 있고, 서로 치열하게 싸울 수도 있습니다. 내가 이 땅에 살았고 머물렀던 흔적이 축복의 통로가 되기 위해서는 마무리가 중요합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의 죽음을 선택하셨습니다. 억울하게 희생 당한 죽음이기도 하지만 한편 스스로 선택한 죽음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남기신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가해자들을 불쌍히 여기고 용서하는 큰 사랑, 배신한 제자들에게도 변함 없는 사랑을 보여주신 큰 사랑, 어느 누구에게도 탓을 돌리지 않은 큰 사랑이었습니다. 죽으셨지만 그 죽음 앞에서 박해하던 이들이나 따르던 이들이나 잠잠했습니다. 큰 사랑의 메시지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용서와 화해의 길을 열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항의가 아니었습니다. 불의와 폭력의 세상을 고발하려는 항거도 아니었고, 자신의 무죄를 증명하려는 항의도 아니었습니다. 더구나 현실의 세상을 고발하고 바꾸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불을 붙이기 위한 용기도 아니었습니다. 이념과 색깔을 포함한 모든 사회적 장벽으로 갈라져 있는 이 땅의 사람들이 진정 하늘아버지의 사랑을 알게 되기를 바라며 변함 없이 걸으신 마지막 걸음이었습니다.

한 국가의 지도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 죽음이 구속을 가져오기를 기대하지만 안타깝게도 더 깊은 반목과 정죄로 남은 사람들 사이를 갈라놓는 것 같습니다. 지역 갈등과 학력 차별 등을 극복하고 사회적으로 소외된 이들에게 특별한 마음을 지녔던 그분이, 보다 분명히 큰 사랑의 메시지를 남겨놓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고인이 할 수 있는 역할은 이제 없기에, 남은 사람들에게 무거운 짐이 남겨졌습니다. 더 이상 서로를 비난하고 정죄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는 것입니다. 고인도 그렇지만 앞서 간 어떤 리더도 완벽하지 않습니다. 다 연약한 인생들입니다. 우리 남은 사람들의 역할은 완벽한 리더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고인에게 있던 선한 뜻만을 받아서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앞으로도 멀리서 가까이서 안타까운 죽음의 소식을 종종 듣게 될 것입니다. 그 죽음이 땅에 떨어진 생명의 씨앗처럼 선한 열매를 맺도록, 하늘 앞에서 겸손히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성숙한 우리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그리고 언젠가 다가올 나의 죽음과 내가 이 땅에 머물렀던 흔적이 남은 사람들에게 구속의 의미가 있기를 기대합니다. 그래서 이 땅에 머무는 동안 나의 존재와 삶에서 '정의'롭게 살아가면서도 '용서와 화해'라는 주님의 메시지를 분명히 전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