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알듯이 자연의 세계에는 쓰레기가 없습니다. 분명 낡고 병들고 죽는 일들이 있지만 그 모든 것은 또 다른 자원이 되어 피조물의 세계를 새롭게 합니다. 마르고 빛 바래어 힘없이 땅에 떨어진 낙엽이 짐승의 똥오줌과 섞여 찬 이슬을 맞으며 썩고 썩어서 비옥한 토양을 만들듯이 모든 것은 또 다른 시작과 새로움을 위해 존재하며 축복의 통로가 됩니다.

우리 하나님은 재활용 전문가입니다.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께는 쓸모 없어 던져버릴 쓰레기란 없습니다. 선한 목적을 위해 모든 것을 사용하십니다. 그 하나님의 크고 선한 손길을 아는 사람은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음’을 압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하나님께서 일하시도록, 토기장이이신 그분께서 다시 빚으시도록 우리의 모든 것을 그분의 선한 손 위에 올려드려야 합니다. 내가 겪은 고통, 악몽처럼 남은 기억, 남겨진 상처의 흔적, 나를 아프게 한 가해자, 그 모두에 대해 스스로 인생의 주인이 되어 여기 저기 쓰레기처럼 던져버리지 않아야 합니다. 쓰레기로 여겨 던져버리면 내 인생과 주변 사람들에게 악취가 되어 돌아다닙니다. 그 모든 것을 선한 손 위에 올려드리고 그분의 품에 안겨 애통하면 우리의 상처와 기억도 치유되고 주님의 인격과 성품을 닮아가게 될 것입니다.

요셉이 그렇게 했습니다. 버림 받은 고통, 구덩이 빠진 기억, 벅찬 종살이와 옥살이, 버린 형들과 모함했던 여주인, 모두 쓰레기처럼 주변에 던져놓지 않았습니다. 애통하는 시간이었지만 하나님의 선한 손 위에 모든 것을 올려드리고 토기장이이신 그분이 모든 것을 아름답게 변화시키기를 기다렸습니다. 요셉의 모습에서 우리 주님의 인격과 성품을 보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가해자에 대한 용서입니다. 용서하지 못하면 스스로 피해자라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되고 겪은 고통스러운 사건 속에 스스로를 가두고 맙니다. 상대방을 자유롭게 할 수도 없지만 자신도 구속하고 어둠 속에 머물게 하여 결코 새로워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어렵지만 용서를 선택할 때 무엇보다 자신을 해방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으로 몰고 가는 가해자들을 위해 기도하십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예수님과 함께 용서를 선택할 때 우리는 새롭고 거룩한 길을 걷게 됩니다.

우리의 기억 중에는 자신의 어리석음으로 빚어진 큰 실패나 누군가를 아프게 하고 상처를 주었던 죄스럽고 수치스러운 일도 있습니다. 인생의 그런 부끄러운 기억도 ‘내 인생에 없었더라면’ 하며 던져버리고 싶은 쓰레기 같이 보입니다. 나 때문에 고통 받은 사람들 앞에 얼굴을 들기도 어렵고 더더욱 자신을 용서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거기 머물러 있는 것도 주님의 뜻이 아니며 결코 새로운 삶을 살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용서를 구해야 할 사람이 살아있다면 그리고 찾을 수 있다면 진심으로 용서를 청해야 합니다. 용서를 청했지만 상대방으로부터 용서 받지 못할 수 있습니다. 비록 용서 받지 못하더라도 그렇게 진심으로 용서를 청할 때 주님께서는 우리의 걸음과 삶을 새롭게 하십니다.

과거를 훌훌 털고 새롭게 살아가는 길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남에게 맡겨져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과거를 잊는데 있지도 않습니다. 과거를 다르게 바라보고 기억하고 해석하는 것이며, 그 모든 것을 하나님의 선한 손 위에 올려놓고 새벽빛을 바라며 첫발을 새롭게 내딛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