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 되면 만물은 새로운 하루를 활기차게 시작합니다. 어제의 과로와 스트레스로 지친 몸을 억지로 일으키는 인생과 달리, 자연 만물은 창조주가 주신 새로운 하루를 창조의 첫날처럼 새롭게 살아갑니다. 과거를 그리워하는 향수병도 없고, 지난 과거의 상처에 대한 기억도 악몽도 없습니다. 마치 다시 태어난 것처럼 진정 새로운 하루를 살아갑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그리스도와 함께 동행하는 길은 이 고백과 선언을 날마다 자신의 것으로 삼고 살아가는 생명의 길입니다.

인생은 만남과 기억으로 이어집니다. 누구를 만났으며 또 어떤 일들을 겪었는지, 그리고 그 경험들을 어떻게 기억하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아갑니다. 좋은 부모와 가족 그리고 좋은 스승과 친구를 만나고 함께 지냈던 행복한 일들을 기억하는 사람은 인생을 아름답게 말할 것입니다. 반면에 가정이나 학교나 사회에서 고통스런 일을 겪고 그 상처를 기억하는 사람은 인생을 어둡게 말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기억도 객관적이지 않습니다. 좋은 환경 속에서 성장하며 감사와 아름다운 마음을 갖게 된 사람도 있지만, 좋은 환경 속에서 자랐으면서도 감사하는 마음이나 만족이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똑 같은 고통스러운 일을 겪은 경우에도 어떤 사람은 그 아픔을 통해 교훈을 얻고 성장하여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가 하면, 반면에 어떤 사람은 그 사건을 통해 분노와 상처 받은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누구나 과거를 갖고 있습니다. 과거는 향수처럼 그리움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반대로 악몽처럼 평생을 두고 인생의 발목을 잡고 있기도 합니다. 그 과거가 우리의 오늘에 영향을 미치고 계속해서 우리의 미래를 만들어갑니다. 이미 지나간 과거를 바꿀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미래는 우리 손에 맡겨져 있습니다. 지난 시간을 어떻게 기억하고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오늘과 미래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과거는 우리가 빛을 향해 나아가지 못하도록 발목을 붙잡고 어둠 속에 머물러 있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은 상처 받은 마음, ‘내가 당했다’는 피해의식(victim mentality)을 갖고 살아갑니다. 그런 심리는 자신의 상처를 어둔 마음으로 바라보고 피해를 입힌 가해자를 묵상하고 그에게 탓을 돌리는 마음입니다. 실제로 어떤 사람 때문에 큰 고통을 겪게 되었을 때 탓 돌리는 마음은 자연스러운 것이며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은 우리를 과거의 사건 속에 묶고 상처받은 마음과 분노로 살아가게 해서 새로운 삶을 맛보지 못하게 합니다.

새롭게 살아간다는 것은 지난 과거를 잊어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의 아픈 기억은 잊으려고 해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새롭게 살아간다는 것은 다른 방식으로 과거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야곱의 아들 요셉은 형들의 시기와 미움으로 이집트 상인에게 팔려가 가족들과 생이별한 채 타국에서 종살이를 합니다. 짧지 않은 기간 외로운 종살이와 이어진 감옥 생활은 요셉에게 주어진 고통이었고 요셉은 피해자였습니다. 그리고 형들은 요셉의 인생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 가해자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요셉이 형들을 만났을 때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창 45:5-8).”

요셉은 지난 과거를 다르게 기억합니다. 자신을 피해자로 형들을 가해자로 규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큰 뜻 안에서 지난 과거를 해석합니다. 그래서 고통스런 과거로부터 자유롭습니다. 아픈 기억을 훌훌 털고 새로운 미래를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