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른 반응

충동적으로 사는 인생들을 보며 하나님은 탄식하십니다. 반대로 늘 자신을 돌아보며 인생에 두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그 뜻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을 보며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우리는 인간이지만 예수님을 닮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보시고 생각하시고 반응하셨던 것처럼 우리도 보고 생각하고 반응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반응(response)의 중요함을 생각해 봅니다. 죽은 사람은 아무런 반응이 없습니다. 살아 있는 사람만 반응합니다. 책임(responsibility)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반응(response)과 능력(ability)이 합쳐진 말인데, 즉 책임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제대로 반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갖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이 짐승보다 더 나은 반응을 할 수 있다면, 그 이유는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능력 때문입니다. 사실 자신을 돌아보지 못하면 단지 충동적으로 반응하는 짐승과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사람만이 거울을 갖습니다. 거울에 자신을 비추어보듯이 자신을 늘 돌아보는 삶을 통해 우리는 어른이 되어가고 성숙한 사람, 책임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거울에 비추어진 모습인 반영(reflection)은 ‘곰곰이 자신을 되돌아본다’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거울을 통해 자신의 내면과 삶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되돌아봄 없이 성숙한 어른이 될 수 없고, 되돌아봄 없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할 수 없습니다. 우리 인생은 하나님의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을 돌아보는 과정을 통해서만 아름다워질 수 있습니다.

격동하는 시대, 행동을 요청합니다. 하지만 자신을 돌아보자는 말은 잘 들리지 않습니다. 매스컴과 인터넷을 통한 어마어마한 정보의 구매의 시대, 충동적으로 선택할 것을 요청합니다. TV 등 매스컴을 통해 쏟아지는 사건들, 구경꾼이 되거나 재판관이 되라고 요구합니다.

마음과 삶을 되돌아볼 수 있는 거울을 잃어버린 시대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소중한 거울이 있는데도 거기에 자신을 비추어보지 않습니다. 그래서 빠른 판단과 행동으로 세상과 시대를 덩달아 어둡게 하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그러나 돌아보는 사람은 자신의 내면을 가꿉니다. 그리고 다른 방향을 잃은 사람들을 비극과 어둠에서 구할 것입니다.

강경파가 득세하는 이스라엘 가운데서도, 역사 속에서 이스라엘이 저지른 잘못을 반성하며 팔레스틴을 위한 선택을 하자는 소리가 있습니다. 9.11 테러 이후에도 테러와의 전쟁을 외치기 보다 미국의 잘못을 돌아보자는 소리가 있습니다. 미군 장갑차에 한국 여중생 둘이 희생당한 후에 쏟아져 나오는 반미의 물결 속에서도 우리 민족 안에 있는 아시아 노동자들에게 우리가 준 고통들을 돌아보자는 소리가 있습니다. 그런 소리와 호소는 작아서 잘 들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더욱 귀 기울여야 할 소리입니다.

자신을 성찰하는 사람, 하나님께서 주시는 거울에 자신을 되돌아 보며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하나님 앞에 머무는 고요하고 단순한 삶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틈이 나는 대로 한적한 곳으로 가서 하나님 앞에 홀로 있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셨습니다. 그 고요함과 되돌아봄이 예수님으로 하여금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르게 한 것입니다.

호수의 수면이 잠잠하고 고요할 때 호수는 하늘을 담습니다. 바람에 출렁거리면 하늘을 담을 수 없습니다. 우리 영혼도 요동치 않고 잠잠해질 때, 우리는 하나님의 거울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이 충동적으로 요동할 때는 일그러진 형상 밖에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고요한 호수의 수면에 하늘이 담기듯이 우리 영혼의 고요한 수면에 하나님의 형상이 담깁니다.  

서로 다른 판단과 행동으로 좌충우돌하는 시대에 빛을 비출 우리의 책임(responsibility)이 큽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가장 소중한 책임은 자신을 되돌아보는 성찰(reflection)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