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성찰하는 삶 (reflective life)

예수님을 따르고 닮아가려는 영성의 길은 세상의 흐름을 따르지 않는 외로운 길입니다. 세상에서 사람들은 자신을 돌아보지 않습니다. 인터넷의 세계가 창(windows)으로 열리듯이 세상은 우리의 눈을 유혹해 끊임없이 바깥을 내다보게 합니다. 그 창으로 바깥을 주목하며 빠른 판단과 행동으로 움직이게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창이 없는 골방으로 초대하십니다.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마태 6:6).”

골방은 매력적인 장소가 아닙니다. 들어가지 않으려는 장소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과 함께 걸으려는 사람은 골방을 소중히 여깁니다. 아무 것도 내다볼 수 없는 곳이지만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곳입니다. 바깥을 내다보며 판단과 행동이 빠른 세상에서 무엇보다 먼저 자신을 돌아봅니다.

판단과 행동은 내면에서 시작됩니다. 우리의 내면에 어둠이 깃들고 악이 꿈틀거리고 있다면, 아무리 위대해 보이고 정당성 있어 보이는 일이라 하더라도 결국에는 문제를 일으킬 것입니다. 내면의 어둠과 악을 다루지 않으면 거기서 무서운 파괴력이 나옵니다.

가인이 동생 아벨과 함께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을 때, 가인에게 기분 나쁜 일이 생겼습니다. 하나님께서 동생이 드린 제물은 받으셨는데 자기가 드린 제물은 받지 않으신 것입니다. 비교하지 않으시고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 왜 자신의 제사를 받지 않으셨는지 돌아보고 회개하며 온전한 제사를 다시 드렸으면 좋았을 텐데, 마음이 상한 가인은 자신의 분노를 동생에게 충동적으로 쏟아 붓고 동생을 살해하고 맙니다.

창세기 34장에 보면 야곱의 딸 디나가 바깥 구경을 하러 나섰다가 동네 청년 세겜에게 끌려가 강간을 당하는 사건이 나옵니다. 세겜은 디나를 사랑했기에 아버지와 함께 찾아와 야곱에게 용서를 구하고 디나를 아내로 달라고 간청합니다. 그 소식을 들은 오빠들 중에 시므온과 레위가 분을 삭이지 못하고 무서운 복수의 칼을 갑니다. 동생을 강간한 세겜 뿐만 아니라 세겜 집안과 부족 전체를 없앨 잔인한 계략을 꾸밉니다. 결국 남자는 다 죽이고 모든 물건을 약탈하고 여자는 소유로 삼습니다. 분노는 그렇게 종족 전체를 살해하는 비극적인 보복으로 끝나는 것 같았지만, 나중에 시므온과 레위 지파에게는 저주가 있을 것이라는 예언을 듣습니다(창 49:5-7).

이런 끔찍한 사건들은 생각 없이 그저 충동적으로 행동하며 살아가는 인간이 저지른 것입니다. 우리의 충동적 판단과 행동은 결코 하나님의 지지를 받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사마리아 마을을 통과하시려 할 때 그 지역 사람들이 환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분이 난 제자들은 충동적으로 말합니다.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눅 9:51-56)?”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꾸짖으시고 다른 마을로 가십니다.

충동적인 인간은 판단도 행동도 빠릅니다. 거기서 나오는 무서운 파괴력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요? 충동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우리는 먼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거울 앞에 서야 합니다. 반사적으로 행동하기(react) 전에 먼저 자신을 돌아보는(reflect)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