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관계를 위하여

우리의 소중한 인간관계에서도 물러남이 필요합니다. 부부, 가족, 친구와 이웃, 민족 등은 분명 우리에게 주어진 하늘의 선물입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 외롭지 않도록 함께 있어 주고 친밀감과 연대감으로 위기의 시기에 함께 서는 든든한 울타리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지나친 애착과 간섭으로 서로를 숨막히게 하며 상처를 주고 받거나, 배타적 결속력으로 다른 이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파괴적인 파워가 되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실 때 소중한 인연으로 맺어진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요 13:1). 하지만 동시에 예수님은 이 땅에 있는 사람들에게 당신의 몸을 의탁하지 않으셨습니다(요 2:24). 사랑하시지만 의지하지는 않으시는 예수님, 바로 우리의 인간관계에 대한 높은 뜻 - 인간은 사랑할 대상이지 의지할 대상은 아니라는 것 – 을 가르쳐 주십니다.

우리의 소중한 가족관계나 인간관계에서 상처를 받거나 섭섭해지는 이유는 사랑하면서 동시에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잘 해주지만 동시에 무엇인가 기대가 있기에 불만족하기도 하고 실망하고 상처도 받습니다. 사랑하는 제자들의 배신에도 예수님께서 상처 받으시지 않은 이유는 그들을 사랑하셨지만 의지하지는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사랑하고 섬기지만 의지하거나 보상을 바라지는 않는, 그런 거룩한 관계를 이루기 위해서는 물러남을 통해 우리의 익숙한 관계를 하나님의 마음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팔이 안으로 굽는 분이 아니었습니다. 유대인의 피를 갖고 유대인으로 사셨지만 배타적 유대주의자 아니셨고, 오히려 이방 사람들을 동일하게 품고 축복하셨습니다. 무리에게 말씀하시는 동안 어머니와 동생들이 찾아왔을 때에도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동생들이냐” 반문하시며,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고 차갑게 들리는 말씀을 하시는 예수님은 혈연 지연 등으로 팔이 안으로 굽는 우리의 배타적 인간관계를 도전하십니다.

가족 이기주의는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 할 사회를 병들게 하고, 민족 이기주의는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 할 지구촌을 고통스럽게 합니다. 하늘의 선물인 소중한 인간관계가 파괴적이고 잔인한 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 좁게는 한 사회에서 가난하고 힘 없는 이웃을 깊은 외로움과 절망에 빠지게 하기도 하고, 넓게는 지구촌에서 테러와 종족살해 등으로 타민족에게 치유하기 어려운 비극을 가져다 주기도 합니다.

독일이 2차 대전을 일으키며 주변 민족들에게 죽음과 절망의 고통을 가져다 줄 때, 독일의 국가교회 목회자들은 히틀러를 지지했고 전쟁에 나서는 독일 군사들을 축복했습니다. 독일 군사들도 민족을 위해 전쟁을 수행하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본 훼퍼는 히틀러 반대편에 서서 독일 민족이 저지르는 죄악을 막으려 했습니다. 그의 외침은 외로웠고 지지 받지 못했습니다. 독일 민족을 위하는 애국자로 여겨지기보다는 나라와 민족 반대편에 서는 사람으로 정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가 진정 나라와 민족을 위한 사람이었습니다. 일본이 조선을 지배하고 대동아전쟁을 일으키며 주변 민족들을 고통스럽게 할 때, 일본의 크리스천인 우찌무라 간조는 일본이 망하게 해 달라고 늘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가 진정 일본 민족을 위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은 자기 나라와 민족에 대하여 거리를 두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 크리스천에게 소중한 나라와 민족이 있지만 한 걸음 물러나 하나님의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는 거리가 필요합니다. 유대 민족의 해방과 독립을 바라며 활동하던 열심당원들에게는 실망을 안겨 주었지만 예수님께서는 더 높은 곳에서 더 큰 마음으로 민족을 바라보고 계셨던 것처럼, 우리 크리스천들도 이기적일 수밖에 없는 나라와 민족 가운데 살면서 이타적으로 사셨던 예수님과 함께 때로 외롭지만 나라와 민족을 도전해야 합니다.

한 걸음 물러나 다른 눈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늘이 선물로 주신 소중한 인간관계이자만, 내 자녀이기 전에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이며, 내 민족이기 전에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어야 할 민족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