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뿌리를 내릴 곳
        
아브라함은 조카 롯이 곤경에 처했다는 소식을 듣고 롯을 구하기 위해 소돔으로 향합니다. 아브라함은 전쟁에서 승리하고 롯을 구해냅니다. 롯과 함께 은혜를 입은 소돔왕은 아브람을 전쟁 영웅으로 후대합니다. 그런 아브라함은 개선장군으로서 소돔에서 영화를 누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영웅으로 대접 받기도 원치 않았고 거기 머물지도 않습니다. 다시 본래의 자리, 상대적으로 불편하고 부족한 것이 많은 장소로 되돌아갑니다. 그곳은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장소요 하나님의 약속이 담긴 장소입니다.

세상은 우리가 포기하고 멀리해야 할 장소는 아닙니다. 긍휼의 사랑으로 찾아가야 할 곳이며 진리의 빛으로 다가가야 할 곳입니다. 우리가 보냄 받은 곳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거기 속한 사람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위해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 하였사옵나이다.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 (요 17)…”

예수님께서는 세상 속에 계셨습니다. 매력적이고 살고 싶기 때문이 아니라, 그곳으로 보냄 받았기 때문입니다. 정착할 곳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과 구원을 전해야 할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세상 속에 계셨지만 종종 한적한 곳으로 물러나신 이유는 세상은 결코 영혼의 뿌리를 내릴 곳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한적한 곳으로 물러나 그곳에서 친밀하게 만나는 하나님께 깊이 뿌리내리고 그분으로부터 오는 비전과 소명을 새롭게 하셨습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요일 2:15-16).”

사도 요한의 경계와 권면처럼 세상은 유혹의 장소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머물러 살아가는 목적을 놓치면, 세상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에 마음을 두게 하고 우리 삶을 분주함과 시끄러움과 혼잡함으로 이끌어서 내면을 어둡게 하고 우리 영혼을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지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세상으로부터 불러내시지만 분리시키시지는 않습니다. 이스라엘을 구별하여 부르신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에게 약속의 땅을 주시고 가나안이라는 세상 속을 살아가게 하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의도와 다르게 이스라엘은 결국 가나안의 영향력에 삼켜져 버렸고 하나님과 멀어졌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뿌리내리게 되었던 시간과 장소는 가나안이 아니라 광야였었고, 잃어버렸던 비전과 소명을 되찾은 시간과 장소도 두 번째의 광야라고 할 수 있는 바벨론 포로 시기였습니다.

물이 넉넉한 매력적인 땅 소돔이 롯의 가정을 영적으로 황폐하게 했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이 이스라엘 민족을 영적으로 무너지게 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편리한 세상도 단지 축복으로 여기고 정착과 행복에 마음을 쏟는다면, 우리 크리스천들도 예외 없이 영적으로 황폐해질 것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과 함께 물러나야 합니다. 분주한 일상에서 한 걸음 물러나 하나님 앞에 머물러야 하고, 시끄러운 세상의 소음에서 벗어나 세미한 음성으로 말씀하시는 그분의 음성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혼잡한 세상에서 한 걸음 물러나 그분 안에서 거룩한 질서를 회복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