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잡함의 어둠

창세기 13장에서 아브람과 롯이 헤어지는 장면이 나옵니다. 목자들 사이의 불필요한 다툼을 해결하려고 삼촌인 아브람이 넓게 펼쳐진 땅 앞에서 조카인 롯에게 선택권을 양보합니다. “네가 오른편을 택하면 나는 왼편을 택하고, 네가 왼편을 택하면 내가 오른편을 택하겠다.” 롯의 눈에 한쪽 땅은 물이 넉넉하고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도 같은 ‘보기에 좋은’ 곳이었습니다. 다른 한쪽은 물이 부족한 광야와 같이 상대적으로 매력적이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롯은 눈에 보기에 좋은 땅을 선택합니다. 그가 선택한 지역은 모든 것이 잘 갖추어진 세상 도시 소돔이었습니다. 그런데 롯이 보지 못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 땅 사람들은 악하였더라.” 그는 소돔 안에 있는 악은 볼 수 없었습니다. 또한 다가오고 있는 하늘의 심판도 내다볼 수 없었습니다.

롯은 소돔에 정착합니다. 창세기 14장에는 롯이 그 지역에서 원치 않게 겪은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소돔을 포함한 인근 지역 왕들 사이에 전쟁이 벌어집니다. 롯은 전쟁에 휘말리고 사로잡히고 모든 것을 빼앗기게 됩니다. 눈에 보기에 좋은 곳을 선택하며 앞 일이 더 안전하고 형통하리라 기대했었지만, 롯은 기대와 다른 고통과 위기 속에 놓이게 됩니다.

이 에피소드는 우리가 매력적으로 여겨 선택하고 정착해 살아가는 세상에서 어떤 영적 어둠을 만나게 되는지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문명 도시는 우리 눈에 좋아 보이는 곳입니다. 모든 것이 잘 갖추어진 편리한 곳입니다. 누구나 선택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우리 눈에 보기에 좋은 곳, 부족한 것이 많은 불편한 곳보다 잘 갖추어진 편리한 곳을 향할 것입니다. 문명 도시로 대표되는 세상은 그런 마음을 지닌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여드는 곳입니다.

거기에 분주함과 시끄러움과 혼잡함이라는 영적 어둠이 깃들고 깊어집니다. 그 어둠 속에서 하나님을 향하기 어렵고 빛이 없어 방향을 잃고 맙니다. 롯이 경험한 것처럼 우리가 원하지 않는 전쟁과 같은 상황에 휘말립니다. 문명 한복판으로 가면 갈수록 경쟁으로 인한 갈등과 다툼이 많고 그 경쟁에서 뒤쳐지지 않으려는 생존의 전쟁에 휘말리게 됩니다. 크리스천들도 벗어나지 못하는 휘말림입니다. 그리고 롯이 사로잡힌 것처럼 우리도 사로잡힙니다. 더 많은 기회와 자유가 주어진 넓은 세상에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분주한 일상에 쫓기며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삶의 비좁은 영역에서 답답하게 갇혀 살아가고 있습니다. 또한 롯이 소중한 것들을 다 빼앗겼던 것처럼 우리도 가장 소중한 것들을 빼앗깁니다. 문명 도시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가족의 소중함(family value)을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그리고 가족해체로 이어지는 비극은 사람들이 원해서 찾아온 것이 아닙니다. 자유와 편리함과 만족을 추구하는 선택이 가져오는 어둠이며, 분주함과 시끄러움과 혼잡함에 휘말리고 사로잡힌 결과입니다.

그렇기에 세상과의 거리가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세상 속에 계셨지만 종종 한적한 곳으로 물러나셨습니다. 그 물러남(retreat)은 세상 속에 있지만 그 어둠에 사로잡히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소명을 따라 살아가기 위한 것입니다. 경쟁 사회에서 물러남/퇴각은 매력적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가 되려면 소홀히 여겨서는 안 될 선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