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속에서 자라는 생명>

생명은 침묵 속에서 자랍니다. 싹 틔우고 꽃을 피워내고 열매 맺는 생명들, 땅 속 깊이 뿌리내리며 한편 위로는 가지를 뻗어가며 여름에는 무성한 초록 잎으로 치장하고 가을에는 아름다운 단풍으로 옷 입는 나무들, 대지와 숲을 자유롭게 다니는 야생의 생명들은 소리 지르며 성장하지 않습니다. 고요한 자연의 침묵 속에서 태어나고 자라며 다음 세대를 준비합니다. 외로운 고아들처럼 염려와 불안으로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쌓아가지 않습니다. 공중의 새를 먹이시고 들에 핀 들꽃을 입히시고 하늘 아버지의 너그러운 품에서 안심하고 살아갑니다.

고통이 찾아와도 침묵 속에서 견딥니다. 살아가는 환경은 결코 만만치 않습니다. 가뭄과 홍수, 찬바람과 된서리, 지진과 산불 등 예기치 않은 고통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거기서 죽음도 맛보고 상처 입고 흉터가 생기기도 합니다. 하지만 절망하지도 않고 창조주를 향해 원망의 말을 쏟아내지도 않습니다. 상처 받은 마음으로 다른 주인을 찾아 방황하지도 않습니다. 잠잠히 받아들이고 잠잠히 회복의 때를 기다립니다.

창조주의 때와 섭리를 알기 때문입니다. 지휘자의 손짓을 놓치지 않는 오케스트라의 단원들처럼 소리를 낼 때와 잠잠할 때를 알며 나서야 할 때와 기다려야 할 때를 압니다. 그래서 격동하는 변화 속에서도 질서를 놓치지 않고, 고난과 아픔을 겪은 상처와 흉터가 남지만, 우리가 보기에 흉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함께 어울려 조화를 이룹니다. 그렇게 창조주와 함께 호흡하는 자연 속에 깊은 평화가 있고 아름다운 음악이 있습니다. 거기서 우리는 쉼을 얻고 위로와 힘을 얻습니다. 그 자연 속에 시끄러움이란 없습니다. 오히려 고요가 있습니다. 그 속에서 생명은 끊임없이 성장하며 활동합니다.

시끄러움에 익숙해진 시대에 우리 주변 어디서도 고요를 만나기 어렵습니다. 도시의 소음은 커 가고 즐겨 듣는 음악도 세대에 따라 그 속도가 빠르고 소리도 큽니다. 공부를 할 때도 조깅을 할 때도 귀에 헤드폰을 하고 무엇인가 들으며 살아갑니다. 만들어진 소리들이 늘 우리 귓가에 있습니다. 그런 소리에 익숙해지면 시끄럽게 여겨지지도 않습니다. 그런 소리가 없으면 오히려 답답해 합니다. 시끄러움에 익숙해지면 오히려 고요가 불편합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우리를 한적한 곳으로 부르십니다. 우리 내면을 침묵으로 초대하십니다. 고요 속에서 우리를 양육하시려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의 생명이 더욱 풍성해지기 원한다면 잠잠히 그분 안에 머물러야 합니다. 그 침묵과 고요가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시끄러움이 아니라 고요에 익숙해질 때, 우리는 그분의 세미한 음성을 놓치지 않을 것이며 서로 마음의 대화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소외된 이들의 신음에도 귀 기울이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