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노나이트 신앙의 역사는 16세기 종교개혁당시에 보다 철저한 개혁을 요청했던 그룹에서 시작되었다. 이들은 성경이 증언하는 세례의 참 의미가 당시의 유아세례에 있지 않음을 분명히 말하고, 이미 유아세례를 받은 성인 크리스천으로서 진지한 신앙고백과 함께 신자의 세례(Believers' baptism)를 서로에게 주었기 때문에 아나뱁티스트(재세례파)라고 불리게 되었다. "메노나이트"라는 이름은 그 후 네덜란드의 한 카톨릭 성직자, 메노 시몬즈(Menno Simons)가 재세례파에 합류한 후 16세기 중엽에 이르기까지 박해받고 흩어져 있던 그룹의 리더였던 데서 유래한다.

전세계적으로 볼 때 백만이 넘는 교인들이 현재 아메리카, 아프리카, 유럽, 아시아에 흩어져 살고 있으며, 역사적 배경을 소중히 간직한 채 성경에 충실한 삶을 사는 제자로서 오늘도 열심히 그리스도 복음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메노나이트 신앙은 일반 크리스천과 동일한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기본 신앙고백에 덧붙여, 이 시대에 맡겨진 그리스도의 참 뜻을 충실하게 실천하기 위해 평화(peace), 정의(justice), 단순한 삶(simplicity), 공동체(community), 봉사와 섬김(service), 그리고 상호원조(mutual aid)를 강조한다.

메노나이트는 신약성경에 충실한 삶,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모범을 따르는 것에 충실한 삶을 기본으로 한다. 평화주의(pacifism)는 메노나이트 신앙의 주춧돌이다. 메노나이트는 폭력 사용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기에 전쟁이나 군복무 참여하지 않는 대신에 순수한 의미에서의 교회와 사회, 국가에 대한 봉사의 길을 택한다. 메노나이트 교회는 신앙고백의 중요한 표현 방법의 하나로 다른 사람들에 대한 봉사와 섬김을 강조한다. 지금도 상당수의 메노나이트 교인들이 메노나이트 선교부나 메노나이트 구호단체를 통하여 국내는 물론 국제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곳에서 선교사로서, 또는 자원 봉사자로서 일하고 있다.

초기 메노나이트들은 주로 스위스와 독일에서 온 당시의 순교자 출신 가정의 후손들이다. 그러나 핍박을 피해 상당수의 메노나이트 교인들이 서유럽을 떠나 신앙의 자유를 좀더 보장  받을 수 있는 미국으로 이주하게 되었다. 러시아는 한때 메노나이트를 환영하여 정착을 허락해 주었지만,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에 걸쳐 박해하게 되었고, 메노나이트들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 또 다른 세계로 이주하게 되었다. 상당수의 메노나이트들이 이때 미국 서부의 여러 지역으로 이주했는데 오늘날은 인구가 많은 수로 증가했다. 이들 중 구세대에 해당하는 많은 사람들은 아직 독일어 방언(low German)을 사용하며 음식문화도 전통을 따른다.

지금도 상당수의 메노나이트 가정에서 low German이 사용되고 있다. 스위스와 독일 메노나이트들은 18, 19세기 펜실베니아에서의 정착을 시작으로 마침내 북아메리카(캐나다) 중서부 지역을 넘게 되었으며, 한편 선교를 통해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흩어져 있다.

현대문명의 이기(利器) 사용을 거부하고 아주 간소한 옷차림과 단순한 생활 양식을 하는 사람들로 널리 알려진 아미쉬는, 메노 시몬즈라는 리더에서 메노나이트가 나왔듯이, 비슷한 시기에 암만이라는 리더의 영향으로 비롯된 재세례파 그룹이다. 또한 후터라는 리더에 의해 형성된 후터라이트라는 재세례파 그룹이 있는데, 그들은 문명의 이기를 부분적으로 사용하며 사유재산 없이 공동으로 살아가는 생활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이런 다양성은 이 세대를 본받지 않아야 한다는 소명(거룩함, 구별)과 시대의 필요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소명(선교, 봉사) 사이에서 어느 쪽에 보다 강조점을 두느냐에 따라 나타난다. 전자를 보다 중시하는 재세례파는 복장을 간소화하고 여자들은 머리 덮개를 하고 바깥 일반 사람들과 구별된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면, 후자를 보다 중시하는 재세례파는 바깥의 더 큰 공동체를 섬기기 위해 노력한다. 서로 상대방이 무엇인가 중요한 소명을 놓치고 있다고 본다면 서로를 품기 어렵지만, 메노나이트나 아마쉬나 후터라이트나 모두 신약성경에 나타난 예수님과 제자들의 발자취, 초대교회의 건강한 모습을 보다 가까이 따르려고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