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과
1. 서로 세운 경계를 넘어 해치지 않도록
2. 약속을 소중히 여기고 지킬 때
3. 돌무더기를 볼 때마다 언약을 상기할 수 있지 않을까요?
4. 세 가지 복이 약속되었습니다.
   - 큰 민족을 이루고 이름이 크게 알려지는 것
   - 신비스러운 보호: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를 저주하겠다.
   - 복의 근원이 됨: 다른 민족들이 그를 통해 복을 받음
5.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지시할 땅으로 가라. (순종을 요청)
6.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7. 이웃(서로)를 자신의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
8. 첫째, 메노나이트 신자들은 일반 크리스천들에 비해서 삶이 모범적입니다. 그들의 거룩하고 구별된 삶이 받은 은혜와 감사에 대한 응답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 한다는 율법적인 요구가 될 때, 그리고 그렇게 살지 못하는 다른 크리스천들을 판단하는 태도를 가질 때, 그들은 은혜를 잊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 이제는 북미의 도시에 주로 진출하게 되면서, 그리고 현대의 주류사회에서 여러 직업을 통해 경쟁하게 되면서, 세속적인 성공과 편안한 삶을 추구하는 모습들도 보이게 되었습니다. 검소하고 단순하게 시골에서 사는 보수적인 메노나이트 사람들이 그런 도시의 메노나이트들을 세상과 타협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꿈을 American dream과 바꿔버렸다고 비판하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세상 속에 있지만 세상과 구별되어야 하는 경계선이 무엇일까요? 그 경계선이 예전보다는 좀더 흐려진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셋째, 반면에 박해를 피해 수백 년 동안 세상과 거리를 두고 살아온 메노나이트 신자들 중에는 세상과의 분리를 강하게 생각하여 아예 자신들만의 울타리를 치고 그 안에서만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때 세상의 소금과 빛이라는 사명에 충실하기가 어렵겠지요.

9. 공동의 기억, 공동의 신학, 공동의 경험, 공동의 울타리입니다. 다 중요하지만, 저는 우리가 예배와 성경공부 또는 MLE 등을 통해 공동의 기억과 신학은 세워가고 있지만, 공동의 경험을 쌓아가는데 좀더 노력했으면 합니다. 함께 공동체적인 교회를 이루어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개인적으로 배우고 아는 것 이상으로 함께 실험해 가는 수고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현대 사회의 크리스천들은 개인적인 일로 매우 바쁩니다. 함께 하는 일에 시간을 내는 것이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공동의 경험을 만들어갈 수 있을까요?
10. 이스라엘은 언약을 깨는 아내로, 하나님은 남편, 용서하고 다시 기회를 주는 남편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11. 옛 언약은 돌판에 기록되었다면 새 언약은 마음에 기록되는 것이며, 하나님은 용서를 베푸시고 진정으로 하나님을 알게 되도록 우리를 새롭게 하십니다.
12. 각자
13.  
- 신뢰: 서로를 믿어줌 (과거의 눈으로 상대방을 보지 않고 새로운 피조물로 보는 것)
- 존중: 서로를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존엄한 사람으로 함부로 대하지 않음 (친하다 어리다 등의 이유로 너무 쉽게 대하는 것은 존중하는 마음을 놓치기 쉬움)
- 이해: 서로를 자신의 잣대로 판단하기보다는 이해하려고 귀를 기울이고 배우려는 자세.
- 상호책임, 용납과 용서, 정직함, 가십(험담)하지 않음, 등등...  
14. 15. 각자
16. 진리의 길을 가르치소서. 이해하는 마음을 허락하소서. 주님의 명령을 따라 걷게 하소서. 주님의 뜻을 사랑하는 마음을 주소서. 불만과 시기심을 없애 주소서. 제 눈이 헛된 것에서 돌아서게 하소서. 당신의 길을 걷게 하소서. 당신의 말씀을 따르게 하소서. 경외하는 마음으로 당신의 인도를 받게 하소서. 수치와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저를 새롭게 하소서.
17. 주님의 길을 배우겠다는 헌신. 주님의 뜻을 사랑하겠다는 헌신, 주님의 길을 따르겠다는 헌신.
18. 첫날 강의 때 받은 노트에 있는 내용을 인용하고 싶습니다. “멤버가 된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것을 의미합니다. 보시고 참여할 의사가 있는지 말해 주십시오.”
- 그리스도의 몸의 한 부분이 되는 것(being part of the body of Christ)
- 함께 예배하고 함께 나누는 것(worshipping and sharing together)
- 사역의 동역자가 되는 것(being partners in ministry)  
- 정기적으로 함께 만나는 것(meeting together on regular basis)
- 서로 존중하는 것(honoring one another)
- 서로 용서하는 것(forgiving one another)
- 사랑을 동기로 정직하게 말하는 것(speaking the truth in love)
-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사는 것(living a life that pleases God)
19. 현재 챨스우드 교회는 멤버가 될 때 세 가지 헌신을 묻습니다.
-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고 따르겠습니까?
- 당신의 은사와 능력을 교회의 사역에 사용하시겠습니까?
- 서로 기쁨과 아픔을 함께 나누고, 정직한 조언을 주고받겠습니까?
20. 우리의 만남과 함께 하는 모임과 나눔에서 그 소중한 영적 태도들이 격려되고 도전되고 실천되는 공동의 경험이 많아져야 하지 않을까요?
21. 성찬과 관련된 묵상 중 제게 가장 인상깊은 것은 헨리 나웬이 표현한 네 가지입니다. Taken Bread, Blessed Bread, Broken Bread, Given Bread. (택함받음, 축복받음, 깨어짐, 나뉘어짐). 성찬의 떡이 그 네가지 단계를 거쳐 소명을 다합니다. 그 과정이 바로 예수님의 삶을 묘사하고 있지요. 선택받으신 분, 하나님의 격려와 복을 누리시는 분, 세상을 위해 부서지시는 분, 많은 사람들에게 내어주신 분. 그 떡은 또한 우리 크리스천의 삶이 그래야 함을 웅변하고 있지 않을까요? 우리도 많은 사람들 중에 선택받은 사람들이요, 하나님의 사랑과 격려라는 복을 받고 있습니다. 그것이 모두가 아니라 남아있는 중요한 소명이 있지요. 우리 삶이 다른 이들의 양식이 되기 위해 부서지고 나뉘어지는 것입니다. 그런 소명을 갖고 사는 사람들이 그립지 않습니까? 우리가 그렇게 사는 것은 어떨까요?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은 분명히 “헌신”입니다.    
22. 챨스우드에 있는 한인 그룹은 배워가고 있는 단계가 아닐까 싶습니다. 헌신하기 위해서 교회에 나오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교회에 나오는 가장 기본적인 동기는 뭔가 경험하기 위한 것 아닐까요? 하나님의 사랑이나 진리라든지, 소속감이나 친밀감이라든지, 얻기 위해 나오는 것이지 자신을 헌신하기 위해 나오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회원(멤버)이 된다는 것이 마치 결혼서약처럼 커다란 전환을 하는 것이라면, 대단한 결심이며 또한 헌신이 요청되겠지요. 하지만 그런 교회관을 생각하지 못했었고, 또 그런 교회 경험도 없는 사람들인 우리들에게는 한편 어렵고 무거운 요청처럼 들리기도 하고, 한편 소중한 도전도 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기를 희망하는 마음도 많이 있지만, 그것이 요구에 의해 되는 것이 아니기에, 시간도 걸리는 것 같습니다. 물론 노력과 기도를 빼놓을 수 없겠지요.
   한가지 개인적으로 아쉬운 것은 메노나이트 교회들도 이 부분에 대해 이론과 실제, 이상과 현실의 간격이 큰 것입니다. 대도시 안에서 각자 흩어져 살아가다가 잠깐 교회라는 공간을 통해 만나는 사람들 사이에 결혼과 같은 헌신을 얼마나 기대할 수 있을까요? 제가 교회보다 (물론 교회도 공동체라고 말하지만)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에 마음을 갖는 이유 하나는 바로 그 때문입니다. 함께 하는 시간이 없이, 서로에게 시간을 헌신하지 않고 어떻게 한 몸이 되며, 어떻게 가족이 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현실에서 절망할 수만은 없겠지요. 너무 이상만 생각하면 우리 한인들 사이의 현실에도 낙망하게 되고 영어권과의 관계에도 아쉬움을 갖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현실을 인정하고 그 한계 속에서, 하지만 이상을 놓치지 않고 헌신할 수 있도록 서로 격려하는 교회가 되어야 하겠지요.